언론에 비친 버핏연구소

[삼성언론재단뉴스] 『새로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이민주 한국일보 경제부 기자

작성자 hankook66 작성일 2014-07-11 06:25 조회 5329

[기고] '새로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이민주 한국일보 경제부 기자

삼성언론재단. 2006. 5

[편집자주 : 삼성언론재단 펠로우로 미국 퍼듀대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는 이민주 한국일보 기자의 유학기를 게재합니다. 이민주 기자는 한국일보 경제부 기자로 휴직중에 있으며 현재 미국 퍼듀대 크란넛(KRANNERT) 비즈니스스쿨 1학년에 재학중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길 위에 있고 자신의 길은 자신이 걸어가야 한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항상 내가 가슴에 새기고 있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자신의 길이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외면할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이번 삼성언론재단 동료 펠로우 분들 가운데 유일하게 MBA(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돌이켜 보니 알고는 도저히 못할 것 같은 길을 걸어온 것 같기도 하고, 특별히 다를 것 없는 길을 걸어온 것 같기도 하다.
확실한 것은 이 길은 나의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이 길을 걸어오면서 그간 겪은 일들은 내 평생동안 아주 특별한 경험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MBA를 생각하는 동료 분이 계신다면 시행착오를 밟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내가 MBA가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정보통신(IT) 업계를 출입하면서 우연히 어느 인터넷 업체의 최고경영자(CEO)를 인터뷰하면서였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그가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참으로 알기 쉽고 논리적으로 설명한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것이 그의 MBA와 컨설턴트 경력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됐다

이때 처음으로 MBA가 뭔지를 찾아봤다. 그래서 MBA는 NBA(미국프로농구)와는 다른 말이고 경영지식을 쌓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기자 생활을 한 지 10년도 넘어서야 MBA가 뭔지를 알았으니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것도 아닌데다, 기자 생활이 깊이있는 경영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때마침 기자생활 10년 넘게 겪고 있던 마감 스트레스 - 이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를 벗어나보고 싶다는 생각과 기자생활이 우물안 개구리일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작용하다 보니 MBA를 해야겠다는 결심은 의외로 쉽게 굳어졌다.

만약 이때 직장생활과 MBA를 병행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 학비 마련 방법, 더 나아가 MBA 이후의 경력 관리 등을 깊게 따져봤더라면 아마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당시의 내게 딱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첩첩산중의 장벽들을 넘어서야 했고 나중에는 뒤로 돌아설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미친듯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어드미션, 그리고 삼성언론재단의 해외연수 프로그램

첫번째 도전은 MBA 어드미션(합격증)을 받는 일이었다. 어드미션을 받기 전까지는 이게 제일 어려운 장벽인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가장 쉬운 일이었다.
MBA 어드미션을 받기 위해서는 GMAT, TOEFL 점수를 받아야 하고, 에세이 작성과 인터뷰를 거쳐야 한다. 하나 하나가 만만치 않게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고, 지금 와 생각하면 매일 스트레이트를 쓰는 부서에 근무하면서 이 모든 과정을 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다. 실제로 MBA 어드미션을 받는 동료 기자들을 보면 예외없이 주간 부서나 비편집국에 근무하면서 준비를 했음을 보게 된다.

그런데 나는 무슨 배짱으로 매일 기사를 넘기는 부서에 근무하면서 MBA 어드미션을 받겠다고 밀어 부쳤는지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 동료 분 가운데 MBA를 생각하신다면 반드시 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결국 숱하게 많은 밤을 하얗게 지샌 끝에야 네가지 과정을 마치고 어드미션을 받을 수 있었다. 이 가운데 토플이 가장 시간을 작게 잡아 먹었고 GMAT는 원래 계획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어드미션만 받고 나면 만사가 해결되는 줄 알았다. 그렇지만 알고보니 어드미션은 정말이지 시작에 불과했다. 그많은 학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회사에는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현지 학업은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사실 이 질문들은 어드미션을 받기 전에 끝냈어야 했다. 그런데 어드미션을 받는 것에만 전력하다보니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이었다.

갑자기 정신이 퍼뜩 드는 느낌과 동시에 지금까지 해온 모든 일들이 정말 무모했다는 후회감이 엄습해왔다. 그간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은 다 뭐였던가. 이 엄청난 젊은 날의 실수를 어떻게 만회한다는 말인가.
며칠을 생각하니 해답은 한가지 뿐이었다. 언론재단의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합격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동료 기자분이라면 아실 것이다. 언론재단의 해외연수는 기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일이고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흔히 말하는 ‘본선’은 고사하고 ‘예선’에 붙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고심 끝에 삼성언론재단에 지원하게 됐지만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쟁쟁한 경력을 가진 지원자들이 많이 지원했다는 소문이 들려왔고, 무엇보다도 이미 두 해 연속 우리 회사 선배들이 이 재단의 해외 연수프로그램에 선발된 때문이었다.
지원서를 제출하고 나서 내가 마음을 완전히 비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MBA 어드미션을 받느라 소모한 시간과 비용이 아깝기는 하지만 무익한 것은 아니다, 그간 영어 공부를 제법했으니 언젠가는 써먹을 일이 있겠지…. 그게 그때 내가 스스로에게 하던 위로의 말들이었다.

그런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삼성언론재단의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합격한 것이다. 서울 태평로에 있는 재단 사무실을 방문했던 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때 내 토플 점수가 상대적으로 높고 연수 대상 학교가 그간에는 없었던 학교여서 다양성 측면에서 후한 점수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연수계획서에 나의 진심을 담은 것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나는 연수계획서에 ‘만약 합격한다면’이라는 가정하에 내가 정말로 해보고 싶은 학업계획을 절실한 마음으로 썼다.
나는 가장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라고 믿는다.

MBA의 뜨거운 맛 보기

어드미션과 학비, 두 가지를 해결하니 마음에 오랫동안 쌓아 둔 짐을 홀가분하게 벗어던진 기분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여기저기서 축하 전화가 날아왔다. 날아갈 것만 같았다.
이제 공부만 하면 되는구나. 공부는 예전에 해본 거니까 문제 없겠지.

미국 땅을 밟을 때만 해도 나는 이런 낭만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엄청난 착각이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나는 나이가 마흔이었다. 입학하고 보니 전 세계에서 몰려온 퍼듀 MBA 스쿨 신입생들을 통틀어서 내가 나이가 가장 많았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장점이 있지만 기억력과 체력의 측면에서는 분명 핸디캡이다. 20, 30대도 힘들어 하는 게 MBA 프로그램인데 나는 이것을 버텨내기에는 기억력과 체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둘째, 나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지 않은 탓에 경영학을 전혀 몰랐다. 대학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을 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는 MBA 학업수행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사실 대학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면 MBA는 그리 어려운 과정이 아니다. 이공계열 출신들도 숫자에 밝다는 점에서 MBA를 거뜬히 해낸다.
그렇지만 인문사회계열을 전공한 사람은 예외없이 MBA를 곤혹스러워한다. 내가 대학에서 공부한 독어독문학은 정말이지 MBA의 어느 과목에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

세째, 나는 그 흔한 엑셀이나 파워포인트도 쓸 줄 몰랐다. 엑셀, 파워포인트는 일반 직장에서는 기본이지만 기자생활을 하면서는 몰라도 아무런 불편이 없다. 신문방송사를 그만두고 다른 직종으로 이직한 동료 기자들이 왜 어려움을 겪는지를 이때 이해할 수 있었다.
MS 문서작성 프로그램인 워드에 그렇게 다양한 기능이 있다는 사실도 이곳에서 처음 알았다.

마지막으로, 영어다. 강의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교수가 웅얼거리면 학생들은 왁자지껄하며 웃음을 터뜨렸지만 나는 멍하게 바보처럼 있어야 했다. 이런 이중삼중의 어려움을 갖고 출발한 MBA 과정이 얼마나 험난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MBA 입학 이후 나는 공부 외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 동이 트기 전에 학교에 갔다가 새벽 별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동료 한국인 MBA들은 골프도 치고 여행도 하며 지냈지만 나는 그야말로 외줄타기의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억만금을 준다면 그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절대 못할 것 같다. 이런 어려움을 뚫고 나는 얼마 전 2학년이 됐다. 회사로부터는 휴직 연장을 허락받았다.

얻은 것들

그간의 경험에서 내가 얻은 게 있는가. 이것저것 따져보니 고생한 만큼 얻은 것도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나는 경영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산업부에 근무하면서 대차대조표나 손익계산서 같은 기업 재무제표를 읽을 줄 몰라 겪었던 양심의 가책 혹은 고충을 줄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숫자나 논리보다 위대한 것은 결국 인간의 의지와 경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얼핏 정교해 보이는 분석 도구와 화려한 파워포인트로 무장한 컨설턴트의 논리에 기죽을 필요가 없다. 기자생활에서 쌓은 현장경험이야말로 소중한 자산이다.

영어 실력도 고생한 만큼 늘었다는 생각이다. 영어 공부는 최근의 3개월간의 여름방학을 활용해 집중적으로 했다.
내가 집중한 것은 리스닝 스킬이다. 리스닝 스킬은 미국 현지에서 공부할 때 가장 필요하지만 한국인들이 가장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리스닝 스킬을 쌓는 데 왕도는 없으며, 많이 듣고 따라 하는 것 외는 방법이 없다.
나는 반복학습기능이 있는 영화 CD를 30장 구입해 질릴 때까지 반복학습 했다. 영화 속의 주인공이 영어 발음을 하면 입모양을 보면서 따라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 내용을 MP3플레이어에 녹음했다가 학교를 오가거나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반복해서 들었다.

방학을 마칠 때쯤의 어느 날 새벽이었다. 청소부 아주머니 - 물론 미국인이다 - 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이제 도서관 문을 닫아야 되는데…”라고 말하자 나는 무심결에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겠다”고 대답했는데, 한참 후에 생각하니 이게 영어로 주고받은 대화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나는 그게 마치 한국말처럼 느껴졌다.
다음 날부터 미국 사람들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TV를 켜보니 배우들의 대사가 들리기 시작했다. 리스닝 스킬은 진전이 느껴지지 않다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갑자기 들린다는 사실을 이때 처음 깨달았다.
자녀의 영어 공부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의 머리는 스폰지 같아서 무엇이든 그대로 빨아들인다. 나의 일곱 살 딸은 이곳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벌써 “아빠는 왜 영어 발음이 그렇게 시원치 않느냐”고 핀잔을 준다.

후회되는 부분도 있다. 학업에만 몰두하다 보니 미국인들의 실생활속으로 깊이 들어가보지 못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며, 한정된 시간 자원하에서 행해진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내가 겪은 경험이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매일 매일 마감과 싸우며 기사를 넘기는 것, 취재원을 만나는 것, 편안하게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 우리 인생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야말로 특별하고 소중한 것들이다.
인간은 누구나 길위에 있고 자신의 길은 자신이 걸어가야 한다. 나는 내가 지금 걸어가는 길이 어디로 향할 지 확신하지 못한다. 확실히 아는 것은 모든 것은 특별한 경험이며, 무계획적이었든 충동적이었든지 간에 내가 선택해 여기에 왔다는 사실이다.

특별한 경험을 쌓을 기회를 마련해준 재단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민주 한국일보 경제부 기자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