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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 버핏 되기] 한국은 가치투자 하기 좋은 나라?

작성자 김승범 기자 작성일 2018-03-13 12:39 조회 134

[편집자주 : '가치투자의 대가' 워렌 버핏의 투자법을 한국 주식 시장의 종목들을 바탕으로 소개하는 '워렌 버핏 되기'를 연재합니다. 1956년 고향 오마하에서 가족과 지인들로부터 10만달러를 투자 받아 정식으로 투자 인생을 시작한 그가 세계 최고의 투자 대가가 되기까지의 과정도 정리해봅니다. 칼럼을 맡은 이민주 버핏연구소 설립자는  2017년 5월 미국 오마하에서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 미팅을 취재하고 워렌 버핏 인터뷰했습니다. 저서로는 <지금까지 없던 세상> <워렌 버핏> <대한민국 업종별 재무제표는 법> 등이 있습니다]

 

이민주 버핏연구소 설립자. 전 대표

워렌 버핏은 1956년 26세의 나이에 정식으로 투자 인생을 시작한다. 자신의 고향 미국 오마하에서 투자자들로부터 10만 5,000달러(약 1억 2,000만원)를 받고, 여기에 자신의 돈 100달러를 보탠 것이 계기가 됐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1996년, 그는 미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의해 처음으로 세계의 부호 1위에 선정됐고, 이후 지속적으로 이 조사에서 톱 클래스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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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 버핏. 사진=구글 이미지 캡처

 

세계의 역사 어디를 뒤져봐도 투자를 통해 세계 최고 부자가 된 인물은 버핏이 유일하다. 당연히 그를 둘러싸고 궁금증과 의문이 나돌고 있다. 그가 두 차례 한국을 다녀간 이후 한국에서도 그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은 커져갔다.
그가 말하는 가치투자는 한국의 주식 시장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가? 직장인, 자영업자, 주부, 대학생 같은 일반인도 과연 그를 따라 할 수 있는가? 혹시 그는 정작 중요한 투자의 핵심은 비밀로 남겨 두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들에 대해 적지 않은 연구와 분석이 행해진 것은 사실이다. 안전 마진(margin of safety), 인지 범위(circle of competence), 내재 가치(intrinsic value) 등의 개념이 어느 정도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을 접하고서도 우리는 무언가 여전히 아쉽다.
왜 그럴까?
실은 버핏이 몸담고 있는 투자의 세계는 그 시대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가 종합적으로 반영돼 성과가 드러나는 분야라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그의 투자법과 투자 용어에 앞서 그가 살아온 시대 배경을 주목한다면 그가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됐는지 오히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 이제 우리는 버핏이 세상에 태어난 때인 1930년 8월 30일로 돌아간다. 장소는 미국의 경제 중심지 뉴욕이다. 그런데 지금의 뉴욕 풍경이 아니다. 거리에는 남루한 차림의 실업자들이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당시 미국의 실업률은 18%였는데, 요즘 미국의 실업률이 8%를 넘었다고 해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과 비교해보라. 기업은 줄도산했고, 은행의 80%가 파산했다.
미국 역사는 이 시기를 대공황(Great Depression)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1937년에야 회복 기미를 보이면서 미국인들의 진을 뺐다. 그런데 이 시기에 미 정부는 대공황의 재발 방지를 위해 제도 보완에 나섰는데, 이 과정에서 미국의 주식 시장은 중대한 변화를 맞게 된다. 바로 기업 회계 원칙의 확립과 공시 제도의 의무화가 그것이다.
기업 회계 원칙의 확립이란 기업의 매출액, 비용, 이익의 개념을 명확히 하는 것을 말한다. 대공황 이전의 미국의 비즈니스 업계에서는 기업의 이익(proft)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었다.
당시 미국 주식 시장의 대장주였던 철도 기업을 예로 들어보자. 철도 기업은 초기에 막대한 코스트를 투입해 철로를 부설하고, 이후 기차로 승객과 화물을 운송하면서 돈을 번다. 그런데 철로와 기차는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재무제표에서 이들의 가치를 깎아내야 한다. 이를 감가상각(depreciation)이라고 한다.
대공황 이전의 미국 철도 회사는 감가상각을 도입하지 않았다. 감가상각을 하지 않은 이익은 과대계상됐고, 철도주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이것이 대공황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미 정부는 파악한 것이다.
1934년 미 정부는 증권거래위원회(SEC)를 설립하고 주식 시장에서 거래되는 모든 기업의 감가상각을 의무화하고, 재무제표를 일반인에게 공시할 것을 의무화했다. 이를 계기로 기업 이익은 명확하게 정의됐다.
기업의 이익이란 개념이 확립됐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기업의 가치평가(valuation)가 가능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가치투자의 창시자'로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이 이 무렵 ’증권 분석’을 쓴 것은 우연이 아니다.
버핏의 투자 성과는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 그가 가치투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를 가능케 하는 제도와 시스템 덕분이다. 만약 미국 정부가 기업 회계 원칙 확립과 공시 제도의 의무화를 시행하지 않았다면 그레이엄의 ’증권 분석’이나 워렌 버핏의 투자 성과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주식 시장에서는 기업 회계 원칙 확립과 공시 제도 의무화가 언제 시행됐을까? 1999년 한국 정부는 대우그룹 분식회계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기업회계기준을 전면 개정했고, 2000년 전자공시시서비스를 시행했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한국의 주식 시장에서는 성공한 가치 투자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버핏이 말하는 가치투자가 한국 주식 시장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가치투자가 한국의 주식시장에서 작동되는 시대를 우리는 보내고 있다.  가치투자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워렌 버핏은 누구?

1930년 미국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서 주식 중개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콜럼비아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이 운영하던 투자 회사 ‘그레이엄 앤 뉴먼’에서 2년 근무한 후 고향 오마하에서 투자 조합을 설립해 투자 인생을 시작했다. 13년의 투자 조합 운영 기간 동안의 연평균 수익률 29.5%를 거둬 투자자들에게 고수익을 안겨주었다.
1965년 방직 회사이던 버크셔 해서웨이 경영권을 취득해 회장으로 취임했고, 이 회사를 우량 기업을 거느린 지주 회사이자 좋은 주식을 보유해 수익을 거두는 투자 회사로 변모시켰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버크셔 해서웨이 주가는 7달러에서 12만 7,000달러(약 1억 4,300만원)로 1만 8,142배 상승했다.
2012년 3월 미 경제 전문지 포브스 발표에 따르면 버핏의 재산은 440억 달러(약 49조 7,000억원)로 멕시코 통신 재벌 카를로스 슬림, 마이크로 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에 이어 세계 3위이다. 철저히 기업의 가치에 근거한 투자 방식을 고수해 ‘가치 투자의 대가’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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