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연구소=신현숙 기자] '사업이란 기업이 최선을 다하는 것은 기본이고 여기에 덧붙여 운(fortune)이 미소 지을 때에 빛을 발한다는 격언을 떠올리게 하는 주류 1위 그룹.'
박문덕 회장이 이끌고 있는 하이트진로그룹의 성장사가 압축된 문장이다.
하이트진로그룹은 한국인들이 '술'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소주와 맥주 시장을 통합한 '주류 1위'이기 때문이다.
◆소주 시장 압도적 1위(66%), 맥주도 1위 눈앞
하이트진로그룹은 올해 초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한기정)가 발표한 공시대상기업집단 76위를 기록했다. 판매 제품은 맥주와 소주가 사실상 전부이다.
하이트진로의 전국 소주 시장 점유율은 1위(66.1%)이며 2위 롯데칠성음료(14.9%)를 한참 앞서고 있다. 이어 경남 지역에 기반을 둔 무학(6.3%), 대구·경북의 금복주(3.3%), 부산의 대선주조(3.2%) 순이다. 서울 지역만 놓고 보면 압도적 1위(73%)이고 2위 롯데칠성음료(27%)와 더불어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참이슬, 진로이즈백이 주력 상품이다.
맥주 시장의 경우 하이트진로는 오비맥주(41%)에 이어 2위(37%)를 기록하고 있지만 점유율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하이트진로의 맥주 시장 점유율을 살펴보면 2018년 21%→2019년 24%→2020년 31%, 2021년 35%에 이어 지난해 37%이다. 하이트→테라→켈리로 이어지는 '히트 신상' 덕분이다. 하이트진로측은 내년 맥주 시장 1위를 차지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는 데 실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하이트진로의 매출액 비중을 살펴보면 소주(58.7%)와 맥주(33.1%)가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합산 91.2%) 이밖에 생수(5.0%), 기타(3.2%) 순이다.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액 2조7700억원, 순이익 1116억원이었고 계열사는 15개이다.
◆히트상품 경영 혁신이 끌고 경쟁사 몰락으로 수혜
그런데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하이트진로그룹은 한국 주류 시장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하이트진로의 회사명은 조선맥주였고 '크라운맥주'라는 브랜드로 맥주시장에서 당대의 '맥주 1위' 오비맥주에 버겁게 맞서고 있었다. 오비맥주를 생산하는 기업은 동양맥주로 당시 재계 10위권의 두산그룹의 핵심 계열사였다. 오비맥주는 시장 점유율 70%로 압도적 1위였고 하이트진로는 크게 차이 나는 2위(약 20%)였다. 여기에다 하이트진로는 소주 사업은 하지 않고 있었다.
하이트진로는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의 주류 1위 기업에 등극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혁신'과 '경쟁사 몰락'의 두 가지 키워드로 요약된다. 두 가지 키워드를 조합하면 '사업이란 기업이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은 기본이고 여기에 덧붙여 운(fortune)이 미소를 지을 때에 빛을 발한다'는 격언이 나온다.
하이트진로가 맥주 시장에서 점프한 첫번째 계기는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경북 구미산업단지에 있던 두산그룹 계열사 두산전자에서 유출한 페놀 30여톤이 낙동강으로 유입되면서 대구, 부산 일대 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던 사건으로 전국적으로 두산 제품 불매 운동이 벌어지는 등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이 파문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의 하나가 오비맥주로 시장점유율이 1991년 1분기 70%에서 2분기 55%로 급락했다.
이 사건이 계기로 작용해 1위로 올라선 기업이 하이트진로였다. 하이트진로는 1993년 국내 최초 비열처리 맥주 '하이트'(HITE)를 내놓았다. 비열처리란 정밀 여과기(micro filter)를 거쳐 선별적으로 미생물을 제거해 맛과 향이 보존되는 공법으로 이전의 가열살균 공법이 맥주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가열살균을 하면서 맛과 향, 신선도가 일부 파괴되는 문제를 해결했다. 여기에다 천연암반수로 만들었다는 점, 맥주 보리껍질을 분리해 쓴 맛을 제거했다는 점을 차별화로 내세웠다. 신제품이 경쟁력을 갖춘 데다 경쟁사 몰락 수혜에 힙입어 하이트는 1990년대 중반 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하이트는 16년(1996년~2011년) 연속 판매 1위, 단일 브랜드로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맥주(누적 판매량 기준) 기록을 갖고 있다(한국주류산업협회 출고 기준).
하이트진로의 두번째 점프는 2004년 당대의 소주 1위 기업 진로그룹 몰락이 계기가 됐다.
진로는 '두꺼비' 브랜드로 1970년부터 2004년까지 무려 34년동안 국내 소주 시장 1위를 기록한 국민 소주 기업이었다. 2003년 조사를 보면 소주를 마시는 국민의 절반 이상, 수도권에서는 10명 가운데 9명이 '두꺼비 진로'를 찾았다. 여기에 힘입어 진로그룹은 1996년 매출액 3조5000억원으로 재계 순위 19위를 기록했다. 그렇지만 오너 2세 장진호(1952~2015) 회장이 1988년 그룹 총수에 취임한 이후 무리하게 사업 다각화를 하다 부도를 맞았다.
이때 시장에 매물로 나온 진로를 인수한 곳이 하이트진로다. 2005년 롯데, CJ, 두산 등이 인수전에 참여했는데, 박문덕 회장은 파격적 금액인 3조4100억원을 써내 진로를 인수했다. 당시 "비싸게 인수했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이제는 지금의 하이트진로로 점프하는 '신의 한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1년에는 진로와 하이트맥주가 합병해 오늘의 국내 최대 주류기업이 공식 출범했다.
◆코로나19 해제, '켈리' 인기로 '제2점프' 계기 맞아
최근 하이트진로는 다시 한번 점프의 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하이트진로는 매출액 2조4976억원, 영업이익 1906억원, 당기순이익 868억원을 기록했다(이하 K-IFRS 연결). 전년동기대비 각각 13.38%, 9.48%, 20.89% 증가했다. 코로나19가 완화되며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영향이 컸다. 식당, 술집 등이 정상 영업을 하며 주류 판매가 늘어난 것이다.
히트 신상품 ‘켈리’도 실적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 올해 4월 하이트진로는 ‘테라’ 출시 4년만에 ‘라거의 반전’ 켈리를 선보였다. 덴마크산 프리미엄 맥아를 100% 사용했고 기존보다 24시간 더 발아시킨 ‘슬로우 발아’ 기법을 사용했다.
켈리의 초기 판매량에서 신기록을 쓰고 있다. 출시 36일 만에 100만 상자, 99일 만에 1억 병 판매를 돌파했다. 7월에는 누적 판매 330만 상자, 1억 병(330ml 기준) 판매를 기록했다. 이는 초당 11.7병 판매된 꼴로 국내 성인 1인 당 2.3병 마신 양이다. 켈리는 이후 66일에는 200만 상자, 90일에는 300만 상자 판매를 돌파, 100만 상자 판매 속도가 약 1.5배 빨라졌다.
박문덕 회장은 박경복 하이트진로 선대 회장의 차남으로 1976년 26세에 조선맥주(현 하이트진로)에 입사했다. 1991년 대표이사에 취임해 1993년 하이트를 내놓으며 사세를 점프시켰다. 1년여 가까이 외부와 연락을 끊고 여관에서 직원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개발에 몰두했다는 일화가 있다. 2011년 하이트맥주와 진로의 합병으로 탄생한 하이트진로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다.
슬하에 장남 박태영 하이트진로 사장, 차남 박재홍 하이트진로 부사장이 있다. 박태영 사장은 1978년생으로 미국 매트로폴리탄대를 졸업했고 앤플랫폼 M&A 책임자를 역임했다. 박재홍 부사장은 982년생으로 수원대를 졸업했고 진로(JINRO INC) 상무를 역임했다.
하이트진로는 미래 먹거리로 위스키를 낙점했다. 주류업계에 따르면 하이트진로는 글로벌 스카치위스키 브랜드 ‘윈저’ 인수를 검토 중이다. 디아지오는 국내 위스키 1위 업체로 ‘디아지오 코리아’, ‘윈저글로벌’을 각각 법인으로 가지고 있다. 이 중 윈저글로벌은 윈저 브랜드를 갖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윈저글로벌 인수와 관련해 검토 중에 있으나, 현재까지 확정된 바는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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