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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상업의 역사2 : 광복과 한국전쟁의 혼란속에서 움튼 산업.
  • 이민주 기자
  • 등록 2024-06-02 20: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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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연구소=이민주 기자]

상업의 역사2 : 광복과 한국전쟁의 혼란속에서 움튼 산업. 박상하. 주류성 출판사. 2024. 1. 23. 





(기업경제학. 임상일. 자유아카데미. 2023. 9. 15.


국가의 기능, 경제발전 그리고 기업의 역할


먼저 인간의 생로병사와 연계해서 국가의 기능을 생각해 보자. 영아 사망률, 식자율과 더불어 사회의 문명도를 나타내는 기본 척도인 기대수명을 보면 82.7세 (남자: 79.7세, 여자: 85.7세)로 초고령화 사회에 이르렀다. 세종대왕이 53세에 별세하셨고 조선 시대 왕의 평균 수명이 47세였음을 상기하면 얼마나 놀라운 발전인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삶의 질 향상에는 교육과 의료가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면 향상된 교육과 의료는 어디에서 왔는가? 생산(生産, production)이 있어야 교육과 의료에 대한지원이 가능하다. 생산이야말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출발점이다. 좀 더 확대해서 보면 생산, 분배, 소비라는 경제활동이 인간의 물질적·정신적 능력을 확대시킨 결과삶의 질이 크게 향상된 것이다)

 

 

8·15해방(1945)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곧바로 뒤따라 이어진 6·25전쟁(1950)은 상계의 거의 모든 것을 파괴시켰다. 폐허와 공허의 잿 더미만이 눈앞에 남은 전부였다.


그러나 이 같은 전환기의 혼란은 또다시 상계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한때 전국을 황금빛 열풍으로 물들였던 (1930년대), 바로 그 황금광 노다지의 꿈과 조금도 다를 게 없었다. 굳이 다른 걸 꼽는다면 노다지의 꿈을 찾아 아무나 무작정 뛰어든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일제강점기 혹은 해방 이후에 창업을 했거나, 그즈음에 창업한 젊고 새로운 기

업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을 따름이다. 

일제강점기에 전성기를 구가했던 상계의 유력 기업들이 해방 이후 반민특위의 숙청 작업으로 비틀거리고 있을 때, 젊고 새로운 기업들이 혜성처럼 등장해서 그 자리를 재빨리 메워나갔다. 일본인들이 빠져나가면서 무주공산이 된 적산敵産 기업에 손쉽게 입성할 수 있었다. 일찍이 춘원 이광수가 감지하고 예언했던 바로 그 '대군'이 몰려온 것이다.



서울 잠실 지구 공유 수면을 매립하여 참실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고 있는 삼부토

건의 공사 현장. 삼부토건은 극동건설 등 과 함께 자유당의 '건설 5인조'로 불리면서

정부 발주 공사를 목점하다시피 했다.


이들 5대 건설업체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였다.. 자유당의 정치자금원 중 비중이 큰 것이 건설업이었는데, 당시 건설업계의 관행을 보면 다음과 같았다. 예를 들어 특정 건설업체가 덩치가 큰 정부 발주 공사를 수주할 경우 공사 가격의 30%는 미리 공제되어 자유당의 정치

자금으로 납부되고, 20%는 (건설업체들 끼리)이익금으로 분배한 후, 나지 50%만 가지고 공사를 했다는 말이, 건설업자들 간에 회자될 정도로 건설업계의 성패 여부는 '정경 고리의 견고성'에 있었다". 


이같이 해방 직후 거저 줍다시피 적산 기업들을 불하받은데 이어, 전쟁 이후 해외 원조자금으로 이루어진 군납과 관납을 비롯한 수입대체산업 중심의 공업화는 그들에게 또 다시없는 황금광의 노다지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절호의 기회를 통해서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낯선 이름의벼락 부호들이, 새로운 기업집단이 돌연 상계에 등장케 되었다.


서울 지하철 충무로역 매일경제신문사 맞은편에 서있는 상계 순위 2위의 옛 삼호그룹의 본사 사옥. 


최근까지 반세기 넘도록 버티고 있었으나, 얼마 전에 헐리면서 지금은 새 빌딩을 한창 짓고 있다. 


1950년대 중반에 이르면 그동안 엎치락뒤치락 하던 상계의 순위도 어느 정도 고정될 만큼 안 정되어 갔다.  때문에 4.19혁명(1960) 이후 부정축재자 처리 문제가 연일 신문 지상 

에 오르내릴 때 사법 당국이 23명의 명단을 발표한 일이 있다. 삼성물산 이병철, 삼호 정재호, 개풍 이정림, 대한전선 설경동, 락희 구인회, 동양시멘트 이양구, 극동해운 남궁련, 한국유리 최태섭, 동립산업 함창희, 태창방직 백남일 등이다. 이들이 곧 당시 국내 10대 그룹의 순위이기도 했던 것이다. 


조선상계 육의전의 마지막 후예이자 「상계의 역사」 100년에서 맨 처음 그룹의 반열에 올라 1950년대의 정상이었던, 태창그룹 백낙승의 후계자 백남일이 가까스로 순위 10위에 랭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부산 피난 시절 미군의 건설 수주를 독점하면서 일약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현대의 정주영이 아직은 10위권 안에는 들지 못하고 있는 건 눈여

겨볼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1950~60년대 10대 그룹 가운데 상계의 순위 1위는 단연 이병철의 삼성이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그는 부산 피난 시절 물자가 절대 부족하다는데 착안하여 국내에서 고철 따위를 수집하여 일본에 수출하는 대신, 홍콩으로부터 설탕과 비료를 수입하면서 상업자본에서 산업자본으로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병철은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다시금 변화를 꾀했다. 사업의 다각화였다.

6.25전쟁(1950) 이후 정부는 원조 자금과 물자 확보를 민생 안정과 전후 복구에 우선적으로 배정했다. 이병철은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시기상조라는 주위의 반대에도 제조를 결정케 된다.


우선 공장 설립에 필요한 외화 18만 달러를 정부 협조로 특별 대출받았다. 나머지 2천만환도 상공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사업 자금을 간단히 확보하면서, 첫 번째 제조 공장인 제일제당을 (1953) 창업할 수 있었다.


이후 식품 중심으로 영역을 확대하여 동성물산의 통조림공장을 인수한데 이어, 제분공장을 건설하고 제분업에도 새로이 진입했다(1957). 그 뿐 아니라 전쟁 이후 긴급한 의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부와 원조당국의 지원을 받아 제일모직까지 창업하면서(1954), 기존의 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의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하여 향후 도약을 위한 기반을 다졌다.

더욱이 시중은행의 민영화 쟁탈전에서 거둔 승전은 컸다. 이른바 모두 일본

 


2위는 정재호의 삼호그룹이었다.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대구 시내로 나가 봇짐장수를 시작으로, 전쟁 직전에서울

는 3,600 규모의 중소기업 삼호방직을 창업할 수 있었다. 전쟁은 그에게 뜻밖의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전쟁의 참화 속에 대부분의 방직공장이 파괴되고 말았으나, 대구에 있던 그의 삼호방직만은 무사했다. 다른 방직공장들이 가동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삼호방직은 때

아닌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더구나 정계의 실력자들이 대구로, 부산으로 줄줄이 피난을 내려왔다. 정재호는 알게 모르게 군력과 가까워졌고, 마침내 자유당의 2인자 이기

붕에게 줄이 닿았다. 이때부터 정재호에게 거칠 것이란 없었다. 삼호방직에 이어 삼호무역

을 창업하면서 떼돈을 벌었다.  


일찍 부산의 조선방직을 인수한데 이어, 대전방직을 복구하고 삼호방직을 크게 확장시켰다. 짧은 기간에 방직왕으로까지 등극케 된다.

그뿐 아니라 전후 시중은행 민영화 때 조선저축은행(지금의 SC제일은행) 까지 손에 넣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이른바 금융 콘체른까지 완성지음 으로써 삼성그룹에 이은 상계 2위의 삼호그룹을 완성케 된 것이다.




상계의 순위 3위는 이정림의 개풍그룹이었다. 마지막 개성상인으로 일컬어지는 그는, 전라도 여수에서 천일고무를 경영하던 김영준의 대리인이었다. 한데 여순반란사건(1948) 때 김영준이 학살되어 죽자 동향 후배인 이회림과 합자하여 같은 해 개풍상사를 창업하고 무역업에 뛰어들었다. 


중석(텅스텐 광석)의 부산물인 창연을 일본에 수출하고, 생필품 따 위를 수입하면서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다. 서울수복 이후에는 제빙공장인 호양산업과 대한탄광을 창업한데 이

어, 전후 원조자금으로 건설하던 문경 시멘트공장을 인수하여 대한양회를 설립했다. 그뿐 아니라 대한유리의 최태섭, 동양시멘트의 이양구, 동양맥주의 박두병, 건설실업의 김광균 등의 지원을 얻어 서울은행을 창업하면서 자력으로 금융 콘체른까지 완결 지었다.


상계의 순위 4위 그룹은 설경동의 대한전선이었다. 설경동은 부산 피난 시절 서울에서 벌이던 사업을 그대로 지속했다. 대한산업과 원동흥업을 경영하면서 일본에 중석 따위를 수출하고, 밀가루와 비료와 같은부족한 생필품을 들여와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

그러다 전후 원조 자금이 기업에 쏟아질 때 설경동은 재빨리 상업자본에서 산업자본으로 진화를 꾀하는데 성공한다. 대한방직 (1953) 창업을 


 

럭키치약 럭키비누 플라스틱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구인회는 뒤이어 럭키치약, 럭키비누까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상계최초로 전자산업에까지 진출하게 된다.

 

이어 화장품 용기를 만들기 위해 다시 손을 댄 플라스틱사업 역시 럭키였다.

서울로 무대를 옮겨 사업을 하던 숱한 기업들이 갑작스런 전쟁으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채 빈털터리로 피난을 내려와 그저 하루 동안의 호구지책을 마련하기 위해 국제시장의 골목길을 기웃거리고 있을때, 그는 플라스틱 사출기 2대를 들여놓고 한창 성업 중이었다. 그만큼 구인회에게는 시간과 공간의 행운이 한꺼번에 따라주고 있었다. 구인회의 락희그룹이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구인회는 플라스틱 사출기로 화장품 용기에서부터 머리빗, 비누곽, 바가지 등 각종 생활용품을 만들어내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돈방석에 앉았다. 떼돈을 벌어들이자 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해진 틈을 타  

 

부산 연지동에 세워진 금성사 공장과 금성사에서 만들어낸 라디오 광고, 금성사는 '골드스타' 브랜드로 미국 아이젠버그사에 처음으로 라디오 62대를 수출하면서 최초의 역사를

써나간다(1962). 이 뒤이어 치약 제조에 나섰는데, 치약사업 역시 공전의 히트였다. 락희

화학의 치약사업은 기존의 경쟁자들은 물론 외제까지 깡그리 몰아내는 기념비적인 성과를 거두면서 단숨에 그룹을 구축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처럼 플라스틱과 럭키치약으로 이미 광범위한 내수시장을 석권한 구인회는, 이런 성공을 발판삼아 손쉽게 영역을 넓혀나간다. 다시 비누메이커인 락희유지를 설립한데 이어, 상계 최초로 전자산업에(1959) 까•지 손을 뻗쳤다. 금성사에서 '골드스타' 브랜드로 라디오를 만들어내기시작하였을 때 구인회의 락희그룹은 어느새 상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로 성큼 발돋음해 있었다.


구인회의 럭키는 거기서 그치지 않 았다. 플라스틱으로 큰 성공을 거둔 락희화학는 반도상사를 창업하여 무역으로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다른 기업가들이 저마다 무역업으로 자본을 축적하여 제조업에 손을 댄 것과 달리, 그는 거꾸로 제조업에서 자본을 축적하 여 무역업으로 진출한 케이스였다.


이양구는 전쟁이 끝나자 제일제당이 인수한 판매권을 이용하여 동양제과를 인수하고 나섰다. 동양제과가 어느 정도 정상화되자 이번에는 제일실업을  창업하여 무역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제일실업마저 자리를 잡아나갔다. 


다시금 동양시멘트(1957)마저 인수하면서 몸집을 자꾸만 불려나갔다.  동양시멘트는 원래 일본의 소노다시멘트 삼척공장으로 건립되었던 개풍 것으로, 해방 이후 체신부 차관을 지낸 강직순의 소유였다. 한데 경영이 대한진 부실했다. 동양제당의 이름으로 이병철·이양구·배동항 등이 합자 인수 락희  했으나, 이양구가 제일실업을 정리하면서 단독으로 인수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해서 소수의 개인이 한국경제 전체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서 학계 및 언론계에서 광범위하게 일치되는 견해는 "정치적 유대political "connection"라는 것이다. 이 같은 견해의 대표적인 예로서 김경동 교수

에 의하면 그룹 총수는 "주로 투기, 가격 조작, 탈세 및 누적된 인플레이션의 이용 등과 같은 비합리적 과정을 통하여 자본을 축적한 '정치적 자(본가political capitalists' 이며, 이러한 과정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정치적 기부의 대가로 경제적 특혜를 얻기 위해 정치적 유대를 이용했다”라고 보고 있다"?

.

이 무렵에 급부상한 그룹들은 기업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정권의 힘을 적절히 이용함으로써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기업의 내부적인 자본 축적을 통한 성장이라기보다는 외부 의존적이고, 상업자본주의적인 유통상의 이익을 통해서 자본 축

적이 이루어졌다. 또한 기업의 경영 관리 풍토가 혁신이나 기술개발보다는 경영의 외적인 능력에 좌우된다고 생각하는 경영 풍토가 조성되었다. 정치와 유착된 상태에서 기업이 운영됨으로써 폐쇄적인 가족경영 체제가 확립되어 배타성을 띠게 되었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 수행 이나 국민 경제적 기능은 도외시 되었다",

 

두 분의 지적은 핵심을 찌른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다고 보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것이 전부라고 잘라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소수의 선택된 사실만이 살아남은 100년 동안의 개척, '상계의 역사'를 통해 광범위하게 일치되는 견해라고 단언할 수 있을지 되묻 고 싶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는 돕는 것과 같이 천우의 기회  


미리 준비되어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또한 간절히 몸부림칠 때만 책을 잇는 일 플레이 

은 모두 일본 적 자 이 보이는 세계가 아닐는지. 학계에서 이 

적인 것이었 그들 예컨대 해방 이후 거저 줍다시피한 적산 기업의 불하로 하루아침에 후세대들의 한일 양국 

의 중·고등 

이용 몸집을 키우고 나자, 곧바로 이어진 전쟁 이후 외국의 원조자금으로 건 료들이 작 

설한 수입대체 산업 중심의 공업화로 다시 몸집을 크게 불린데 이어, 또 에 소재한 

서 느꼈던 을 수 없었 다시 몸집을 거대하게 불려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목전에 기다리 고 있었다.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4.19혁명(1960)으로 무너지고 장면 

정권이 들어섰으나, 곧바로 이듬해 5.16쿠데타가 일어나 육군 소장 박정 

희가 정권을 잡게 되면서 또 다른 격변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렇잖아도 되고 있는 

관련 정 상당 수준의 '정치적 유대'와 '상업주의적 유통 이윤에 주력'했던 자신 한다. 이 

스캔, 인 거의 

들의 상공적 경험을 바탕으로 의기투합하여, 이제는 본격적인 고공으로 는지 알 

않은 독 비상할 수 있는 도약의 그날을 저마다 준비하고 있었다. 모두가 그 같은 는 분들 

털고고 풍운의 시대를 통과해온 것이라고 두 분 지적의 말미에 덧붙이고 싶다. 의 과거 

출발 요컨대 '60년대 이후 새로운 시대 곧 본격적인 경제개발의 시대를 어기 

차게 열어나가기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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