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그룹을 설명하는 가장 익숙한 단어는 ‘도시가스’다. 하지만 현재의 삼천리를 도시가스회사로만 보면 그룹의 확장 방향을 놓치게 된다. 연탄으로 출발해 도시가스·발전·집단에너지로 성장했고, 최근에는 외식·자동차·식품·금융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삼천리자전거와는 관계가 없는 별개의 기업집단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6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자료에 따르면 삼천리그룹은 공정자산총액 9조9385억원으로 재계 57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53위보다 네 계단 내려갔다. 그러나 공정자산은 9조6642억원에서 2743억원(2.8%) 증가했다. 순위 하락은 그룹의 축소보다는 다른 기업집단들의 자산 증가 폭이 더 컸기 때문이다. 계열회사는 33개에서 41개로 8개 늘었다. 이 가운데 비금융회사가 29개, 금융회사가 12개다.
공정위 집계 기준 삼천리그룹 전체 매출액은 5조9597억원, 당기순이익은 3204억원이다. 비금융 계열사들의 자본총액은 6조2590억원, 부채총액은 3조976억원으로 부채비율이 약 49.5%에 그친다. 재무안정성이 새로운 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
삼천리 지배구조와 현황. 단위 %. 2026. 1Q. [자료=공정거래위원회]
◆ 연탄 1위에서 도시가스 1위로…시대 변화에 올라탄 70년
삼천리 연혁. [자료=더밸류뉴스]
삼천리그룹은 1955년 10월 유성연·이장균 창업주가 서울 을지로에 삼천리연탄기업사를 세우면서 출발했다. 유성연 창업주는 연탄 제조와 판매를, 이장균 창업주는 원탄 조달과 자금을 맡았다. 서로 잘하는 분야를 나눠 맡은 ‘분업형 동업’이 삼천리 성장사의 출발점이었다.
삼천리는 1978년 국내 연탄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연탄 수요가 줄어들 것을 예상하고 1982년 경인도시가스를 인수해 도시가스 사업에 진출했다. 1987년 국내 최초로 LNG 도시가스를 공급했고, 1997년에는 전국 도시가스 판매량 1위에 올랐다. 난방연료가 연탄에서 도시가스로 바뀌는 흐름을 선제적으로 포착한 것이다.
도시가스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 일정 지역에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사업이다. 삼천리는 경기 서·남부와 인천 일부 지역에 대규모 공급망을 구축해 국내 최대 도시가스 사업자로 성장했다. 안정적인 수요와 현금흐름, 신규 사업자가 들어오기 어려운 진입장벽이 삼천리의 핵심 경쟁력이다.
2000년대 이후에는 도시가스를 넘어 발전과 집단에너지로 확장했다. 삼천리ES와 삼천리ENG를 설립했고, 휴세스·안산도시개발·에스파워 등을 통해 열병합발전과 LNG복합화력발전 사업에 진출했다. 2014년 상업운전에 들어간 에스파워의 안산복합화력발전소는 그룹 발전사업의 핵심 자산이다.
주력 상장사 삼천리는 2025년 연결 기준 매출액 5조2755억원, 영업이익 1596억원, 당기순이익 131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액은 3.0%, 영업이익은 39.6%, 순이익은 7.9% 증가했다. 도시가스 판매량 증가와 에스파워의 수익성 개선, 삼천리모터스의 신차·중고차 판매 확대가 실적을 끌어올렸다.
올해 1분기에도 연결 매출액은 1조8095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0.3%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1101억원으로 13.6%, 순이익은 1021억원으로 13.9% 증가했다. 도시가스 판매단가와 전력도매가격(SMP)이 하락했지만 판매량과 원가 구조가 개선되면서 수익성은 높아졌다.
삼천리 연간 매출액 및 영업이익률. K-IFRS 연결 기준. [자료=삼천리 사업보고서]
◆ ‘성경김’ 품고 BMW·BYD까지…도시가스 밖에서 찾는 성장
삼천리그룹 주요 계열사 매출액 추이. [자료=각사 공시·삼천리 IR]삼천리그룹의 현재 사업 포트폴리오는 에너지·환경, 생활문화, 금융 등 세 축으로 나뉜다. 에너지·환경 부문에는 삼천리·삼천리ES·삼천리ENG·에스파워·휴세스·안산도시개발·ST인터내셔널이 있다. 생활문화 부문에는 외식기업 SL&C, BMW 공식 딜러 삼천리모터스, BYD 공식 딜러 삼천리EV와 성경식품이 자리 잡았다. 금융 부문은 삼천리자산운용과 삼천리인베스트먼트가 담당한다.
생활문화 사업의 시작은 2008년 중식 브랜드 ‘Chai797’이었다. 이후 호우섬·바른고기 정육점·서리재·이타마에스시 등으로 브랜드를 넓혔다. 2016년에는 삼천리모터스를 설립해 BMW 딜러 사업에 진출했고, 2024년 삼천리EV를 세워 지난해 11월 중국 전기차업체 BYD의 국내 공식 딜러가 됐다.
삼천리 주요 사업별 매출액 비중. [자료=삼천리 1분기보고서]가장 눈에 띄는 최근 투자는 ‘지도표 성경김’으로 알려진 성경식품 인수다. 삼천리는 올해 2월 성경식품 지분 100%를 약 1195억원에 인수했다. 성경식품은 2024년 매출액 1236억원, 영업이익 83억원을 기록했다. 도시가스와 연관성이 낮은 식품회사를 인수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계열사 추가 이상의 의미가 있다. 국내 에너지 수요의 구조적 정체 가능성에 대비해 K푸드를 새로운 성장축으로 선택한 것이다.
공정위 자료에서 삼천리 계열사가 1년 만에 8개 순증한 것도 이런 확장을 보여준다. 성경식품과 성경식품 제2공장, 에스지유통을 지분 취득으로 편입했고 태양광·투자·부동산 관련 법인도 신설했다. 총 9개 회사가 증가하고 1개 회사가 흡수합병으로 제외됐다.
투자 여력은 충분하다. 올해 1분기 말 삼천리 연결 기준 현금성 자산은 1조658억원으로 차입금 8947억원을 웃돌았다. 안정적인 도시가스 현금흐름이 성경식품과 전기차, 금융투자 사업을 뒷받침하는 구조다.
그러나 사업 다각화가 곧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외식과 자동차 유통은 경기와 소비심리에 민감하고, BYD 딜러 사업은 국내 전기차 시장의 경쟁 심화와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넘어야 한다. 성경식품도 원초 가격 변동과 수출 확대, 기존 외식사업과의 시너지 창출이 과제다. 도시가스에서 벌어들인 현금을 비관련 사업에 투입한 만큼 투자수익률을 숫자로 입증해야 한다.
◆ 두 가문 70년 ‘동일지분’…3세에도 동업 이어질까
삼천리그룹 지배구조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이장균·유성연 두 창업자 가문의 동업이 70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이장균 가문은 삼천리를, 유성연 가문은 옛 삼탄인 ST인터내셔널을 주로 맡아 운영하면서 두 회사의 지분을 동일하게 보유하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2025년 말 기준 이장균 창업주 가문과 유성연 창업주 가문은 삼천리 지분을 각각 약 19.53%씩 보유했다. 이장균 가문에서는 이은백 사장이 9.18%, 이만득 명예회장이 8.34%, 이은희·이은남·이은선 씨가 각각 0.67%를 보유했다. 유성연 가문에서는 유용욱 ST인터내셔널 부사장 9.18%, 유상덕 회장 6.46%, 유혜숙 씨 등이 지분을 나눠 보유하고 있다. 비상장사 ST인터내셔널 역시 두 가문이 지분을 절반씩 보유하는 구조다.
삼천리그룹 오너 가계도. 2026. 1Q. [자료=더밸류뉴스]
3세 경영의 중심 인물은 이은백 삼천리 사장과 유용욱 ST인터내셔널 부사장이다. 이은백 사장은 이장균 창업주의 장손이자 이만득 명예회장의 조카다. 유용욱 부사장은 유상덕 회장의 차남이다. 두 사람은 2025년 말 기준 삼천리 지분을 각각 37만2070주와 37만2069주 보유했다. 지분율은 9.18%로 같지만 이은백 사장이 한 주 더 많다.
이만득 명예회장의 셋째 딸 이은선 부사장도 승계 구도의 변수다. 이 부사장은 외식 등 생활문화와 미래사업을 맡으며 그룹의 비에너지 사업 확장을 주도해왔다. 성경식품이 외식·식품 부문의 새 축으로 안착하면 그룹 내 역할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상장사 삼천리 이사회에는 2016년 이후 오너 일가가 참여하지 않고 있다. 현재 사내이사는 전문경영인인 유재권 대표이사와 전영택 대표이사다. 소유는 두 창업가문이 나눠 갖고, 상장사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맡는 구조다.
삼천리는 올해 3월 보유 자사주 가운데 42만8248주, 발행주식 총수의 10.6%를 소각했다. 약 565억원 규모다. 주당 배당금도 3000원으로 확정했다. 자사주 소각으로 오너 가문을 포함한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은 일제히 상승했지만 두 가문의 힘의 균형에는 변화가 없다.
삼천리그룹이 70년 동업을 이어온 비결은 사업과 역할, 지분을 정교하게 나눈 신뢰에 있다. 하지만 3세 시대에는 과거의 신뢰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가 어떤 사업을 책임지고, 투자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며, 두 가문과 전문경영인 사이의 의사결정 권한을 어떻게 구분할지 명확히 해야 한다.
삼천리의 다음 10년을 결정할 질문은 ‘도시가스를 넘어설 수 있느냐’다. 성경김과 BMW·BYD, 외식·금융 사업이 도시가스에 이은 새 수익원으로 자리 잡는다면 삼천리는 성공적인 장수기업의 사례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신사업이 현금만 소진한다면 안정적인 본업이 비관련 다각화의 비용을 떠안게 된다. 70년 동업경영의 진짜 시험대는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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