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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인간은 고기없이는 지금에 이르지 못했다 『고기, 욕망의 근원과 변화』
  • 이민주
  • 등록 2017-07-08 21:4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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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욕망의 근원과 변화>. 난 멜링거(Nan Mellinger) 지음. 임진숙 올김. 해바라기 펴냄.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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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마음, 정신, 생각, 정서가 진화의 산물이자 생리 작용, 호르몬의 작용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인생을 왜 살아야 하는걸까?

- 국가 수반이 돼 국가의 정상에서 공개적으로, 즉 모범적으로 "나는 채식주의자"라고 선언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우두머리는 고기를 먹는 사람이다" (자크 데리다)

- 진화 과정에서 인류가 도태의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육식에 있었다. 사냥을 통해 고기를 섭취함으로써 인류는 지금의 만물의 영장으로 우뚝 섰다.

- 자본주의(Capitalism)에서의 '자본'(Capital)은 '가축'(Cattle)에서 유래한 것이다.

- 2005년 우리나라(독일) 국민은 1인당 고개 31.9kg, 달걀 202개, 우유 35.kg을 소비했다. 우리는 고기가 매일 대중에게 제공되는 꿈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 

- 고기에 대한 인류의 갈망은 본능이다. 인간의 육류 소비 욕망은 생물로서의 인간과 먹이사슬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 작용의 결과이다.

- 영장류는 고기를 갈망한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비오듯 떨어지는 과일을 먹는 모습을 보고 학자들은 원숭이를 채식 동물로 오해했다. 그러나 원숭이 사실 과일속에 숨은 벌레를 먹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아마존의 여러 종족들은 과일보다도 유충에 더 관심이 많다. 그들은 벌레 먹은 무화과를 깨서 벌레를 잡아먹고 무화과는 그냥 버린다.

- 고기는 사냥을 통해 얻어야 하고, 동물 사냥을 위해서는 무리(사회)를 조직하고 협동해야 했다. 식물은 채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맞서 싸워야 하고, 공포심을 극복해야 한다. 고기는 공포, 분노, 성취감 같은 지금의 인류의 특성을 갖게 해준 출발점이었다.

- 사냥은 인류의 지능을 발전시켰다. 인류는 사냥을 위해 도구를 개발해야 햇다. 최상의 도구를 만드는 방법을 가장 빨리 배우고, 그 도구를 언제 사용해야 하는지를 가장 현명하게 결정하는 자만에 자연 도태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 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게 된 것도 사냥과 관련이 잇다.

- 인류와 유전학적으로 99% 이상 똑같은 침팬지는 인생의 10%의 시간을 동물 사냥에 보낸다. 침팬지의 사냥 대상은 어린 비비 원숭이, 어린 야생 돼지 등이다. 침팬지가 사냥한 고기를 배분하는 모습은 초기 인류의 모습과 유사하다. 사냥한 고기를 함께 나눠먹는다는 점에서 침팬지의 사회적 행위는 고기의 특별한 역할을 입증한다.  

일부 침팬지들은 먹이를 잡아온 침팬지 주위에 모여들어 사냥해온 고기나 사냥꾼의 입술을 건드리며 먹이를 달라고 손을 위로 뻗는다. 사냥을 담당한 침팬지는 위협적인 몸짓으로 답하고는 홱하고 몸을 돌리거나 어니면 다른 침팬지에게 자신이 사냥해온 고기의 일부를 먹도록 허락한다. 때에 따라서 구걸하는 침팬지에게 한조각 뜯어낸 고기를 나눠 주기도 한다. 작은 뼈는 통째로 먹고, 큰 뼈는 핥아 먹는데, 지능이 높아 손이나 나뭇잎을 써서 음식을 퍼먹기도 한다.

- 우리 조상은 동물 시체가 발견되면 재빨리 달려들어 주변의 독수리에게 꽥꽥 소리를 내며 쫓아냈고, 짐승 시체에 달려들어 고기를 뜯어 근처 나무로 재빨리 올라갔다. 나뭇가지에 올라가 있으면 비교적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때로 몸집이 큰 고양이와 짐승들이 올라와 우리 조상의 맛잇는 식사를 방해하기도 했다. 이런 일은 초기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가장 위험한 일이었다. 다시 말해 적당한 도구와 무기로 사냥을 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존재로 진화하기까지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엇다.

- 4만 5,000년전,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 신체와 지능면에서 그들의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했다. 이제야 비로소 사냥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초기의 인류는 짐승의 썩은 시체를 먹다가 적극적으로 사냥에 나섰다. 기후로 인해 식물성 식품의 조달이 어려워진 시기에 최소 하루 할당량의 고기는 1인당 약 1kg이었다. 초기 인류의 무리가 40명으로 구성돼 있었다고 본다면 야생소를 1주일에 1마리 정도 사냥해야 했다. 메머드, 들소, 그리고 몸집이 큰 다른 종의 동물을 사냥한 이유는 최상의 생계 수단을 제공할 만큼 살이 많았기 때문이다.

- 고기에 대한 갈망은 고기를 옮겨야 하는 고기 수송의 어려움과 관련해인간의 거주지까지 옮기도록 만들었다. 사냥꾼은 가끔 자기가 거주하는 동굴에서 아주 멀리 떠나야 했다. 가까운 구역에서 사냥감을 찾기 어려우면, 부상을 당해 거의 죽게 된 야생동물이라도 가져오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구석기인들은 항상 다른 곳에서 생활할 준비가 돼있었다. 즉 자신이 거주하는 동굴이 아닌 사냥 구역 주변에 있는 동굴을 이용했다. 이런 동굴은 사냥꾼이 안전하게 쉴 수 있는 피난처가 됐고, 사냥한 동물의 고기를 분해해 무거운 뼈를 발라내는 장소로 이용됐다. 고기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체력과 자력을 공급했고, 뇌에 미치는 2차적인 영양의 결과로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하게 뇌의 성장과 활성화에 도움을 주었다.

- 고기는 추가적인 진보를 가져왓다. 첫째, 불을 다룰 줄 알게된 점과 둘째, 짐승을 길들이게 된 점이다.

1. 불을 사용함으로써 인류는 소화 과정을 단축시켰다. 2. 사냥을 하지 않고도 규칙적으로 고기를 공급해줄 수 있는 공급원을 길러 동물성 식품을 더욱 풍성하게 햇다. 고기(육식)는 생물학적인 진보 과정의 결과이며, 호모 사피엔스가 발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도구와 무기를 사용하면서 사냥 기술이 날로 숙련됐고, 이를 계기로 인간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다.

- 고기는 남녀 성역할의 분리도 가져왔다. 여성이 임신과 출산으로 사냥을 하지 못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면서, 남성은 사냥을 전담하게 됐고, 여성은 남성에게 예속되기 시작했다. 여성은 남성으로부터 고기를 얻는 대신에 성(Sex)을 제공했다. 인간이 태초의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후 외형은 같지만 남녀의 역할이 달라진 이유도 고기에 있었다. (세상은 나빠지고 있는걸까, 나아지고 있는걸까?)

- 마빈 해리스에 따르면 선사 시대의 선조들은 풍족하게 살았다. 석기 시대 사람들은 후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건강하게 살았다. 로마 시대에는 훨씬 더 많은 질병에 시달렸다. 석기 시대 사람들은 오늘날의 중국과 이집트 농부나 노동조합을 가진 20세기의 공장 근로자보다 노동 시간이 적었다. 품질 좋은 음식과 오락, 문화적인 욕구 충족 등의 만족감을 논하자면 석기 시대 사람들은 오늘날의 부자들이 누릴법한 호사를 즐겼다.

지금의 샐러리맨은 주말동안 숲과 호수에서 맑은공기를 마시려면 5일동안 일해야 한다. 오늘날 창밖으로 별로 넓지도 않은 잔디밭을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리려면, 온 가족이 무려 30년을 뼈빠지게 일하고 저축해야 한다. 오늘날 지구상의 3분의 2는 어쩔 수 없이 채식을 하며 살아간다. 이에 반해 석기 시대에는 누구나 단백질이 풍부하고 섬유소가 많은 음식을 즐겼다. 그리고 고기는 심하게 냉동시키거나 항생제와 색소가 들어 있지도 않았다" - 르네 자라르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폭력을 즐기고 전쟁을 신봉하는 본능이 내재돼 있다. 살인 혹은 살륙 행위는 인간의 유전학적 본성에 기인하며, 육식과 사냥에서 비롯된다.

- 진화의 결정적인 추진력은 사냥이 아니라 고기를 먹고 싶은 갈망과 적대적인 주위 환경에 대항해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 필요성이었다. 많은 동물 종이 처음에는 인간보다 월등하게 노련한 사냥꾼이었다. 인간이 동물의 먹잇감에서 사냥하는 존재로 진화하기까지 오랜 시간과 충격적인 과정을 거쳐야 했다. 수렵 시대 이전과 초창기에는 분명히 암울한 공포의 시대가 있었을 것이다.

- 인간이 사냥을 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지금의 신체 조건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여전히 네발로 걸어 다녔을 것이다. (종교의 탄생은 이런 배경과 관련있다)

- 본격적인 종교는 농경 시대의 개막과 함께 등장했다. 농경 사회로 이전하면서 인류는 맹수에게 잡아 먹힐 위험은 감소했지만 인간의 운명은 '더 위대한 힘'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됐다. 홍수, 한파, 가뭄이 수확을 망치거나 질병으로 가축을 죽게하여 인간에서 식량과 노동력을 빼앗는, 삶을 위협하는 천재지변은 예측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그래서 연중 정해진 시기를 골라 자연 현상 뒤에서 보이지 않는 힘을 주관하는 상상속의 신을 섬기는 제사 의식이 거행됐다. 신에게 재앙을 없애고, 지상에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빌었다. 제사의 시기는 사계절의 흐름에 맞추었다.

- 인간은 신을 통해 받은 것의 일부를 제물로 바쳤다. 여러 종교에서 동물을 신에게 바치기 위한 제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고기는 허기를 진정시켜줄 가장 귀중한 먹거리이자 삶의 상징이며, 세속적인 부의 상징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 제물(Opfer)이라는단어는 축제(Fest)라는 의미와 거의 동일하게 쓰였다. 동물이 제물로 바쳐질 때마다 풍부한 제사 음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제사 의식이 거행되면 제물로 바쳐진 동물을 제단 위나 사원의 부엌에서 구워서 나눠 먹었다. 농경 사회에서 고기는 주로 제물로 바칠 때만 먹었다. 구약 성서의 레위기에는 "제물 의식을 거치지 않고 동물을 도살한 자는 피로써 벌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분명히 적혀 있다.

- 제물은 폭력을 신성화하는 가장 명백한 실례이다. 동물을 희생시키려면 폭력 행사가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먹기 위해 짐승을 도살했다. 우리 선조들은 맹수들에 의해 잡아먹히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 살아있는 것을 죽이는 폭력은 죄책감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제사 의식에서 동물을 제물로 바칠 때 다양한 형태의 변명과 용서를 늘어놓는다. 인간은 신이 행하는 것을 돕는다고 합리화했다. 살아있는 다른 생물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신들의 몫이다. 예를 들어 고대 바빌론의 제사 의식에서는 제사장이 제물로 바쳐진 동물의 머리를 자를 때 다음과 같은 말로 용서를 구했다.

"이 행위는 신들에 의해 행해진 것입니다.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그로써 다른 생물을 해친 부담이 신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양을 도살한 후 자신에게 엄습해오는 복수의 위험에 대한 안전 장치의 행위였던 것이다. 인간은 목전에 행할 행위에 대해 변명을 하고 동물을 살해하면서 마치 친척의 죽음을 애도하듯이 신음 소리를 냈다. 인간은 짐승을 도살하기 전에 동물에게 먼저 용서를 구햇다. 극단적인 경우 자신의 팔 다리 중 하나를 다치게 해 그들의 종족에게 복수를 하지 말 것을 부탁했다.  태초의 인류는 맹수에 포위된 집단이었으며 늑대, 유인원, 표범의 사냥 대상이었다. 그 세계는 공포가 지배하는 세상이었으며, 인간은 항상 맹수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중요했다. 집단의 일원이 육식 동물에 의해 희생되면 다른 사람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우선, 이방인, 노약자, 어린이가 제일 먼저 희생물이 됐다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딱 한가지. 인간 스스로가 사냥꾼이 되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인류는 사냥을 시작했다.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다른 사람이 죽으면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안도감과동시에 집단의 일원을 잃은 비애의 감정과 뒤섞인다. 죽음을 당한 희생양을 영웅으로 표명하는 것은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공포를 극복하게 해주엇을 것이다.

- 아즈텍의 제물 바치기 풍습은 끔찍하다(64). 인간 구성원을 희생물로 삼는 아즈텍의 제물 희생 의식은 현대인에게 반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희생기구로 사상 유례없이 많은 동물을 말살하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인간적인가'?

- 18세기까지 인간의 삶은 끈임없이 반복되는 기아와 전염병, 질병의 연속이었다.

- 인간은 생존을 위한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단순히 적을 방어하는데 그치지 않고, 상대방을 잡아먹는 행위를 통해 먹이 사실의 최고 위치에 이르렀다. (생존하기. 채식의 탄생)

- 농경사회에 접어들면서 인류는 고기를 충분히 구할 수 없었다. 엄청난 곡물 생산과 고기 생산지였던 구석기 시대의 거대 지역에서 육류 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치스러운 음식이 됐으며 고기를 먹을 기회는 점점 줄어들어 제사 의식의 제물을 나눠먹을 때나 맛볼 수 있게됐다. 마침내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육식의 섭취가 일반적으로 금지됐고, 육류 음식이 심각하게 부족한 지역에서는 고기를 불결하다는 인식이 주입됐다. 다시 말해 식물성 음식을 먹는 것이 동물성 음식을 먹는 것보다 신의 섭리에 더 맞다는 해석을 퍼뜨렸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교회 칙령이 내려졌다. 식물성 음식의 권장은 농업에 적합한 사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심리적 규범적인 방향의 의미를 가졌다. 소고기 섭취의 금지는 불교의 탄생과 더불어 시기적으로(기원전 600년경) 전쟁, 홍수, 기아로 인해 인간의 생활이 급속히 악화됐던 시기와 일치한다.

베다 시대(기원전 1,500~500년)에 브라만 계급의 동물 희생제에서 고타마 싯다르타(Gotama Siddhartha. 석가모니)는 사회적 빈곤과 생태적 위기의 원인을 깨닫고, 효과적인 위기 관리를 위해 도살 금지를 선포했다. 불교 외의 종교적 개혁 운동인 자이나교는 동물을 죽이고 먹는 행위 모두를 그지했다.

반면 불교는 신봉자들에게 도살을 금지했지만 이미 죽은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것은 허용햇다. "왜 암소가 신성화됐는지 내게는 명백합니다. 암소는 인도에서 가장 귀중한 동반자입니다. 소는 풍요와 함께 우유를 줄 뿐만 아니라 농사를 지을 수도 있게 합니다." 세계 4대 종교에서 음식에 대한 규정은 당시의 생활 조건을 반영한다.

힌두교에서 암소가 신의 동반자로서 생존과 풍요의 상징이자 인도의 대지와 기후 사정에 비춰 수레를 끄는 가장 적합한 동물로 신봉돼 먹는 것이 금지된 반면, 유대교와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돼지고기 섭취를 금지한다. 이는 비용 대비 이익을 고려한 것이며, 중동 지역의 환경을 반영한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말고기를 금기시한다. 말을 먹을 수 없는 고기로 분류했던 시점은 인간의 생활 방식이 농경 생활로 전환되는 시점과 일치한다.

말은 빨리 달리고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 말은 군사적인 기능에는 기사들의 전통이 반영되었고, 농가에서조차 말에게 동물 중 특별한 위치를 부여함으로써 사회적 기능이 보충됐다. 전쟁을 수행하는데 말은 효용 가치가 높았다. 말의 가치는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존중됐다. 8세기의 한 선교사가 교황 그레고리 3세에게 게르만과 북유럽에 퍼진 말 고기 섭취 문화를 비난하는 서한을 보내자 교황은 곧바로 다음과 같이 답장했다.

"그대는 몇 몇 사람이 야생 말을 먹고, 심지어 사육한 말을 더욱 많이 먹는다고 알려왔소. 성스러운 형제여, 어떤 상황에서도 그대는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도록 허용해서는 안되오. 반드시 적절한 형벌을 그들에게 내리시오. 그대는 형벌을 통해 그리스도의 가호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도록 하시오. 이런 행위는 불결하며, 혐오스러운 일이기 때문이오."

모든 금기에는 물질적 배경이 깔려 있다. 먹을 수 있는 고기와 먹을 수 없는 고기를 금기시하는 고기의 분류로 인류의 물질적 조건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육식의 탄생)

- '과학'의 이름으로 동물과 기계를 동일시하던 시기가 있었다. 동물은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신학자 니콜라 말브랑슈(Nicola Malebranche)는 새끼를 밴 암캐를 발길질해 울부짖게 한 후 여기에 격분한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무 것도 아니야, 단기 기계일 뿐이야"

-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카인은 채소로 신을 기쁘게 하려했던 반면, 동생 아벨은 자신의 집에서 키우는 가축을 바쳤다. 신은 아벨의 제물을 기뼈했지만 카인과 그의 제물은 쳐다보지 않았다. (종교의 탄생)

- 기근과 기적적인 식량 증식은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메마른 땅에서 힘들고 가난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생계에 필요한 식량을 얻는 일이 문제가 됐음을 의미한다.

- 농경 시대의 여러 다른 종교들처럼 기독교도 '기아의 고통'을 정신적 에너지로 극복하려는 시도를 했다. 금욕은 인류의 타락과 근친 살해와 결부된 농부의 노고에 대한 보답이며, 가장 쓰라린 고통속에서 욕망의 파라다이스를 맛보려는 모순된 행위로 나타났다. 금욕주의는 고기를 포기함으로써 현실을 벗어나 신에게로 향하는 사순절의 전통속에 남아 있다. 고기에 대한 금기는 이런 생활 여건 외에도 고기를 죄악시하는 것으로 세속적, 육체적 죄악과 결부한다. 물고기가 대용품으로 등장했다.

물고기는 9~10세기 때부터 사순절 음식 목록에 포함됐다. 부자들은 금식을 면하는 대가를 돈으로 지불해 사순절의 금기를 멋대로 위반할 수 있었다. - 18세기 식량 혁명은 인간의 원초적 기아의 공포를 해결해주었다. 이는 자연의 한계로부터의 조직적인 해방이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고기'라는 꿈같은 일이 현실화됐다(일부 기아 국가에는 아직도 이는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 *** 햄버거(혹은 버거킹)는 이런 식량 혁명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동글납작한 고기를 밀가루 빵 사이에 끼워 넣어 가공한 햄버거는 완벽한 육류 공급 시스템의 상징이었다. 햄버거(Hamburger)는 1885년 미국으로 건너간 독일인 이민자들이 만들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햄버거는 타타르 기마 민족이 고기를 말 안장 밑에 넣어 말을 타고 달림으로써 부드럽게 만들어진 고기에서 유래돼 점차 유럽으로 퍼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타타르 아시아의 소고기가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에서본사를 두고 전 세계에서 엄청난 수익을 거두는 대기업이 되기까지 600년이 걸리지 않았다.

신선한 고기가 얹혀진 햄버거는 인류에게 '꿈의 음식'이다. 도살되는 날까지 부엌에서 먹이를 줘가며 키웠던 조류(닭)이 바로 '살아있는 고기 저장품'이었고, 고기를 살 능력이 있었던 소수의 사람들ㄹ은 고깃덩이를 지하실이나 저장 창고에서 통풍이 잘되게 매달아 보관했다. 토끼는 내장을 제거한 후 껍질을 벗기지 않은 채로 통째로, 야생 조류는 깃털을 벗기지 않은 채로 저장했다. 거의 썩은 고기에 붙어 있는 껍질에 사람들은 향료를 뿌려 맛의 중립화를 시도했다. 말리고, 훈육하고, 소금에 절이는 방법이 육류의 장기간 겨울나기를 위한 일반적인 저장 방식이었다. 이 방법들은 보존 기간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인류는 이런 골치아픈 저장을 하지 않고 곧바로 햄버거 가게에 들르면 싱싱한 고기가 얹혀진 햄버거를 구매할 수 있다. 그것도 매우 저렴한 가격에.. 이것은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적 혁명이다.

- 햄버거는 새로운 신앙이다. 햄버거는 '신성한 고기'를 제공한다. 맥도날드라는 대성당에서 매일 2,800만명이 들른다.

- 1906년 미국 저널리스트인 업톤 싱클레어(Upton Sinclair)는 <정글>이라는 소설에서 시카고의 유니온 스톡 야드(Union Stock Yards)으 생활과 그 주변 상황을 기술했다.

그는 유니온 스톡 야드 시스템의 동물의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또한 '고기 포장 산업'의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이 소설은 미국 시민에게 잔인한 동물 도살과 노동자의 노동 착취에 대항하는 항의 운동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는 식탁에 오르는 고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우리에게 오는지 잘 모른다. 실은 애써 기피를 하는지도 모른다. 접시에 놓인 고기를 나이프로 썰어 분해하고 식욕을 돋울 때까지 사람들은 동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변화됐는지에 대해 무관심하기를 원했다. 동물이 생산되고,살찌우고, 도살되는 장소와 준비되고 소비되는 장소가 분리되었고, 육류 산업의 끊임없이 성장하는 설비로 인해 일반 사람들은 도살 광경으로부터 멀어져 공개적으로 동물에게 행하는 잔인한 행위와 거리를 두게 됐다.

니체는 정신병이 발발하기 전, 1889년 잠시 투린(Turin)에 머물렀을때, 거기서 마부에 의해 학대받던 늙은 말을 목격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을 껴안았다. 19세기를 경과하는 동안 동물을 보호하는 수많은 법률이 공표됐던 점과 마찬가지로 인간 감정의 변화를 대변한다. 1830년 프랑스 정부는 공공 장소에서 동물의 피를 버리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공포했고, 그로부터 25년 후에는 동물에게 잔혹한 폭력을 공개적으로 행사하는 행위에 처벌을가했다.

-오늘날 우연히 한번이라도 도살 기구의 내면 생활과 희생되는 동물의 고통이 대중 매체를 통해 공개될 때면 크게 떠들썩하는 격분의 소리는 죽음을 무대 뒤로 옮겨놓은 배부른 사회의 제례 의식이다. 이런 공포의 외침에서 우리는 동물을 희생시킬 때 행했던 고대 제례 의식의 외침을 인지할 수 있다. - 속어사 사전을 보면 '고기 한점'(bit of meat)은 남성들 사이에서는 섹스를 의미했고, 나중에는 매춘부를 가리쳤다. '싱싱한 고기'는 가게에 새로 들어온 매춘부를 의미했다. '생고기'는 각각의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며, '정육점'은 유곽을 의미했다. '고기 시장'은 매춘부와의 만남 또는 여성의 가슴이나 성기를 의미했다. '한점 또는 한 조각의 구이'라는 표현은 오늘날에도 영어권 남성들이 '여성과의 섹스'를 표현하기 위한 말로 사용한다.

- 동물과 여성을 길들이는 시기는 대략 농경 사회로 진입하는 과도기에 이뤄졌다. 이 농경 사회의 인간들은 야생의 근원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혼동의 선사 시대에서 '문명'으로 진입한다. 그러나 먹고 먹히는 정신적 외상은 여전하다. 동물은 이제 더이상 적이 아니다.

농부는 다른 농부를 사냥하는 사냥꾼이 되거나.. 강제 탈취의 원칙은 항상 낯선 것을 자기 것으로 변화시키려는 생각과 관련 있다. 강제 탈취는 또한 남성과 여성의 합법적 결합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결혼은 남성이 여성을 상징적으로 섭취하는 것, 신랑이 신부를 길들이는 것으로 이해됐다. 몇몇 문화권에서 결혼은 남성이 여성을 성공적으로 먹어 치우는 것의 일부로 여긴다.

- 남성에 의한 여성의 상징적인 섭취는 변신 놀이의 일부분이다. 이 놀이를 통해 동물의 수가 급격히 감소돼 더이상 동물을 죽이는 것이 사회적 명성을 높이는 근원이 아님에도, 사냥꾼과 남성은 전쟁에 참여해 새롭게 창조해야 했던 영웅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 중세 전성기와 중세말 유럽에서 여성들의 음식물 기피는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남성들 또한 채찍질같은 외부 작용에 의한 고통을 가해 자신의 신체의 일부를 다루었다. 물론 이런 행동은 신체를 초월해 성인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었고, 12세기에 급격하게 증가했으나 남성보다는 여성의 특징이었다. 이시기의 연대기와 성인들의 역살르 살펴보면 거의 아무 것도 먹지 않았거나 결코 평범한 세속의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주장했던 수많은 성녀들을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성녀는 바로 카타리나 폰 지이나(Katharina von Siena. 1347~1380)로서 그녀가 먹은 일상 음식의 양은 한 주먹의 풀이었고, 그 외에 억지로 먹어야 했던 모든 것을 구토해 몸 밖으로 내보냈다고 전해진다. 마리에 폰 디그네스(Marie von Dignes)와 베아트리체 폰 나자레트(Beatrice von Nazareth)는 고개 냄새만 맡아도 구토햇고, 음식물을 보면 식도가 심하게 부어 올랐다. 몇몇 성녀들은 음식물을 볼 때 얼굴을가렸고,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거부했다. 15세기를 살았던 콜롬바 폰 리앤티(Columba von Rienti)같은 성년느 스스로 굶어 죽었다. 200년 후인 17세기의 성녀 베로니카(Veronica)는 언제나 3일은 금식을 했고, 단지 금요일에만 다섯개의 그리스도 성혼을 상기하며 오렌지 씨앗 5개를 씹었다. - 금욕은 존중받았다.

- 육류에 대한 인간의 사고 또한 변했다. 접시에 놓은 고기를 나이프로 썰어 분해하고 식욕을 돋울 때까지 사람들은 동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변화되는지에 대해 무관심하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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