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밑줄긋기] 흑인 노예는 어떻게 미국으로 이동했는가? 『흑인 노예와 노예 상인』
  • 이민주
  • 등록 2017-07-09 07:14:03
  • 목록 바로가기목록으로
  • 링크복사
  • 댓글
  • 인쇄
  • 폰트 키우기 폰트 줄이기

기사수정

<흑인 노예와 노예 상인>.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275370

- 노예들이 가야하는 길은 100~200킬로미터에 이르는 먼 길이었기때문에 도중에 적지 않은 노예들이 죽어 나갔다. 노예 상인들은 죽은 흑인 노예의 시체를 이정표로 삼아 길을 걸었다.  
일단 포로가 잡히면 선별 작업이 이뤄진다. 건장한 남녀와 6~7세가 넘는 아이들은 해안으로 향할 무리로 한쪽으로 모으고, 6세 미만의 아이들은 총이나 창으로 죽였다. 노인들과 환자들은 내버려 두는데 어차피 굶어죽기 때문이었다 출발 준비를 마치면 남녀 흑인은 항구로 향하는 먼길을 떠난다. 신발은 물론이거니와 거의 벌거벗은 상태에서 불타는 사막과 아프리카 산악의 바위투성이 험로를 가로질러야 한다. 허약한 흑인 노예의 발걸음을 재촉하기 위해 채찍질이 계속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힘이 센 흑인 노예는 사슬로 함께 묶어 놓거나 멍에를 씌웠다.

- 노예는 상품이었다. 어떤 흑인 노예는 소총 한자루,그리고 네통의 화약과 교환됐고, 어떤 흑인 노예는 브랜드 한병과 교환됐다.

- 중세말 루이 14세 시대에는 갤리선을 젓는 슈르므(자리에 묶여 노를 젓는 노예)로 북아프리카인들을 이용했다. 사슬에 묶인 채 채찍을 맞으며 노를 젓는 일은 아무도 원하지 않았으므로 자연스럽게 노예를 동원했다. 동유럽의 슬라브족들이 주로 노예로 동원됐다. 노예를 뜻하는 'slavus'라는 단어는 여기에서 유래됐다.  간혹 죄수들이 동원됐다. 

- 15세기 접어들어 포트투갈인은 아프리카 동부 해안을 따라 탐험을 시작했다. 탐험 도중 그들은 여행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흑인들을 잡아들였고 그들은 노예로 팔아 넘겼다. 처음에는 얼마 되지 않던 이 노예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요 상품이 됐다.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인구의 대이동은 이렇게 시작됐다.

- 가장 잘 알려진 삼각 무역으로는 대서양 간 노예 무역으로, 15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이루어졌던 노예 무역은 자본주의가 남긴 가장 비인간적인 행위이다. 아프리카의 흑인 1,500만명 가량이 노예 매매상에 의해 잡혀 대서양 건너 미국 동부 13개주로 강제 이송됐다.

- 노예상인들은 아프리카 동부해안과 모잡비크 등에서 흑인 노예를 잡았다.노예상인들은 그곳의 족장에게 양털, 목화, 브랜디, 쇠막대, 유리 구슬 등을 건네고 흑인 노예를 받았다. 흑인 노예는 아프리카에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의 동부 해안의 13개 식민지로 팔려 갔다. 일부는 스페인령의 식민지인 멕시코,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로 팔려갔다.
아메리카에 도착한 노예 상인들은 건강한 노예와 병든 노예를 골고루 섞어 묶음 판매했다. 이곳에서 노예를 판 대가로 열대 작물, 커피, 설탕, 목화 등을 받으면 노예 상인은 이번에는 이 물품을 싣고 유럽으로 건너가 이 물품을 판매했다. 이른바 삼각무역으로 불린다.

- 노예매매는 수지 맞는 장사였다. 유럽을 출발해 귀환하기 까지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렸는데, 결산을 하고 나면 손해를 보는 경우는 15~20%에 지나지 않았다.

- 노예 상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우리는 노예 상인이 잔인하고 악독한 심성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실은 그들은 선량한 중산층이었다. 주로 영국 런던, 브리스톨, 프랑스 마르세유, 포트쿠갈 리스본이 고향인 이들은 점잖은 신사였고, 성실한 남편이었으며, 책임감 있는 아버지였다. 그들의 대다수는 노예 무역을 하는 동안 볼테르의 <캉디드> 같은 선량한 미개인의 덕성을 찬양하는 철학 서적을 탐독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는 노예 매매상은 없었다.

- 만일 구군가가 흑인을 매매하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를 비난해봤자 그들은 치욕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노예 매매는 자본주의가 장려하는 개인의 이윤 추구 행위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본주의 원리의 충실한 이행자였다.

- 노예들은 나무로 된 형구에 목이 씌워진 채 마치 가축처럼 긴 행렬을 지어 끌려갔다. 앞장을 서는 인솔자는 그의 바로 뒤를 따르는 흑인 노예와 목에 씌운 나무형구의 손잡이를 어깨 위에 걸치고 있었다. 만일 노예상이 그 행렬을 멈추고자 한다면 그의 어깨 위에 놓인 나무 손잡이를 놓아버리면 그만이었다. 첫번째 노예가 멈추어 서면 나머지 노예들도 따라서 멈추었다.

- 백인 구매자는 노예들의 입과 눈을 꼼꼼하게 살폈다. 노예는 하나의 상품이었다. 상태가 양호하지 않은 노예는 헐값에 거래됐다. 각만에 백만이 있거나 치아가 빠져 있으면 그 수에 따라 가격이 낮아졌다. 백인 구매자는 노예로 하여금 달리게하고, 뛰어 오르게 하고, 말하게 하고, 팔다리를 놀려보게 했다. 말 매매상처럼 궤양이나 피부병, 괴혈병, 기생충 같은 신체적 결함이나 질병의 증상이 있는지 점검했다.
거래가 끝난 흑인에게는 곧바로 가슴 또는 어깨 위에 불에 달군 은제 낙관으로 새로운 주인의 이니셜이 새겨졌다. 이런 과정에 끝나면 노예들은 라 플뢰르, 마리, 장 따위의 새 이름을 얻었다. 그 노예는 농장으로 끌려갔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주간 뉴스 클리핑] 부동산사회 [부동산]- 재무구조 개선 태영건설 윤세영등 임원22명 감축- 전세사기 피해금, 올해 더 늘었다…작년 4.3조, 올해는 벌써 1.4조 떼여- 서울 아파트값 4주 연속 상승…경기는 다시 하락 전환 [사회]- 임대차 미신고 과태료 1년 더 유예- 장애인단체 지하철 시위…4호선 혜화역 약 1시간 무정차 통과- "어찌 되든 빨리 결정을"…오락가.
  2. DSR, 비철금속주 고ROE+저PER+저PBR 1위 DSR(대표이사 홍석빈. 155660)이 4월 비철금속주 고ROE+저PER+저PBR 1위를 기록했다.버핏연구소 조사 결과 DSR은 비철금속주에서 고ROE+저PER+저PBR 1위를 차지했으며, 풍산홀딩스(005810), 황금에스티(032560), 태경비케이(014580)가 뒤를 이었다.DSR은 지난해 매출액 2911억원, 영업이익 243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매출액은 20.79% 증가, 영업이익은 32.12% 감소...
  3. [윤진기 명예교수의 경제와 숫자 이야기] 니콜라스 다비스 투자 이야기의 함정 니콜라스 다비스(Nicolas Darvas, 1920-1977)는 헝가리 출신의 무용가인데, 주식투자를 해서 짧은 기간에 200만불을 넘게 벌었다. 그의 투자 이야기는 그의 책 《나는 주식투자로 250만불을 벌었다》에 잘 소개되어 있다. [1]니콜라스 다비스는 주식투자를 하면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 끝에 ‘박스이론’(Box Theory)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주가가 일정한 .
  4. 제이엠티, 디스플레이장비및부품주 저PER 1위... 4.55 제이엠티(대표이사 정수연. 094970)가 5월 디스플레이장비및부품주 저PER 1위를 기록했다.버핏연구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이엠티는 5월 디스플레이장비및부품주에서 PER 4.55배로 가장 낮았다. 이어 한국컴퓨터(054040)(4.7), 인지디스플레(037330)(5.23), 톱텍(108230)(5.45)가 뒤를 이었다.제이엠티는 지난해 매출액 1227억원, 영업이익 148억원을 기록하며...
  5. [버핏 리포트] 고려아연, 신사업 성과가 주가 상승 Key-신한 신한투자증권이 8일 고려아연(010130)에 대해 신사업 부문 성과 및 최근 이어지고 있는 금속 가격 상승 랠리를 통해 중장기적 이익 개선이 기대된다며 투자의견은 '매수', 목표주가는 60만원으로 평가 유지했다. 고려아연의 전일 종가는 47만3000원이다.고려아연의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1845억원(YoY +26.54%)이다. 연(납) 판매량이...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