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자전.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 자서전. 이병철 지음. 나남. 2014. 4.
※호암자전은 이병철(1910~1987) 삼성 창업주가 직접 쓴 유일한 회고록이다.

◆제일제당 창업
한국전쟁이 예기치 않게 터지면서 나는 모든 재산을 잃었다. 나는 서울의 삼성물산을 뒤로 하고 피난길에 올랐다. 내가 가진 재산은 거덜이 났다. "나는 망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정귀 과장(동서식품 창업주)이 "사장님, 아닙니다. 전쟁 전 홍콩으로 수출했던 물품 대금 3만달러가 도착했습니다"라고 보고했다. 믿기지 않았다.
3만 달러는 거액이었다. 나는 이 돈을 종잣돈 삼아 무역업을 다시 시작했다. 이 자금으로 시작한 무역업은 6개월 만에 순이익 10억 원을 돌파했고, 1년 만에 60억 원이라는 엄청난 부를 쌓게 해주었다. 서정귀 과장은 피난 와중에도 장부를 챙기고 대금 회수를 보고했다. 사업에는 운도 따라야 하지만, 그 운은 철저한 준비와 신뢰 관계 위에서 작용한다.
6.25 전쟁이 끝나자 나는 전후 복구 사업으로 수입 대체 산업을 구상했다. 당시 가장 외화 소모가 컸던 세 가지 품목이 바로 설탕, 밀가루, 종이였다.
나는 일본의 지인들을 통해 이 세 가지 사업의 시장성과 설비 견적을 요청했다. 그런데 제당 사업에 관한 조사 보고서와 견적서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상세하게 도착했다. 나는 설탕 사업을 하기로 했다. 사업에는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
사업에는 운이 따라야 한다. 하지만 그 운이라는 것도 준비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법이다. 제당 사업의 자료가 먼저 도착한 것은 하늘이 준 기회였고,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즉각 실행에 옮겼을 뿐이다.
당시 설탕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귀했고 수요는 폭발적이었다. 원당을 수입해 국내에서 가공할 경우, 완제품 수입보다 외화를 60% 이상 절감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우리나라 사람의 입에 들어가는 것 하나 우리 손으로 만들지 못하고 외제에만 의존해서야 되겠는가. 설탕은 생활 필수품이다. 이것을 국내에서 제조하면 외화를 아끼고 국민에게 값싸게 공급할 수 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했다. 기술도, 자본도, 경험도 없는 나라에서 설탕 공장을 짓는다는 것은 무모한 도박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나는 확신했다.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었고, 그것이 바로 기업가의 길이라고 믿었다."
1953년 일본에서 설탕 제조 시설을 들여와 공장에 설치했다. 부산 전포동에 공장을 세우고 기술자들과 함께 현장에서 살다시피 하며 기계 설비와 씨름했다. 나는 공장 건설 현장에 야전 침대를 갖다 놓고 밤낮으로 독려했다. 설비 하나하나가 내 자식 같았다.
그리고 공장 가동에 들어갔다. 그런데 도대체 설탕이 나오지 않았다. 노란색 거물죽한 물이 나왔다. ..(중략).... 가슴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3일째의 일이었다. 공장의 한 용접공이 지나가더니 툭 던지듯이 말했다.
"무슨 원당을 그렇게 많이 넣으시요. 한꺼번에 너무 많이 넣어 균형을 잃은 것 같소."
이게 결정적이었다. 그의 말대로 균형을 맞춰가면서 원당을 넣었더니 순백의 정제당이 쏟아져 나왔다. 드디어 성공한 것이다. 나는 그 하얀 가루를 손바닥에 올리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단순한 설탕이 아니라, 우리 국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결정체였다."
이날 1953년 11월 5일을 나는 제일제당의 창립기념일로 정했다.
-싸고 좋은 상품은 팔린다
◆과욕을 버리고 내 능력과 한계를 파악하라
- 황무지에 공장이 들어서고 수많은 종업원들이 활기에 넘쳐 일에 몰두한다. 쏟아져 나오는 제품의 산더미가 화차에 트럭에 실려 나간다. 기업가에게는 이러한 창조와 혁신감에 생동하는 광경을 볼 때야 말로 비로소 바로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소중한 순간이다. 기업가의 이러한 끊임없는 도전과 의욕이 국가 경제 발전에 초석이 되고 원동이 되는 것이다.
-"당시 우리 경제는 원조에 의존하는 기형적인 구조였다. 나는 원조 물자를 받아 장사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생산 시설을 갖춘 제조 공업을 일으켜야만 이 나라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했다."
- 초기에는 일상생활의 필수품을 자급자족하는 소비재 산업, 경공업을 육성함으로써 기술과 경험, 자본을 축적하고, 그 기반위에 고도의 기술과 거대한 자본이 소요되는 중화학 공업이나 전자 등 고도 기술 산업으로 점차 이행해가야 한다.
- 전쟁이 터지면 모든 게 끝나는 줄 알지만 경제는 여전히 움직인다.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온다. 전시 경제가 그것이다.
- 사업은 반드시 시기와 정세에 맞춰야 한다. 사업을 운영할 때는 첫째, 국내외 정세의 변동을 통찰해야 하며, 둘째, 절대로 무모한 과욕을 버리고 자기 능력과 한계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하고, 세째, 요행을 바라는 투기는 절대로 피해야 하며, 넷째, 직관력의 연마를 중시하는 한편 제2, 제3의 대비책을 미리 강구함으로써 대세가 기울어 이미 실패하고 판단이 서면 깨끗하게 미련을 버리고 차선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 사업이란 우연히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의욕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제아무리 수익성 높은 사업이라도, 그것을 발전 확장시켜 나갈 능력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시기(時期), 사람, 자금의 3박자가 맞춰지지 않으면 성공을 기약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책임지고 최종적인 결단을 내리는 것은 최고 경영자의 임무이다. 이때 깊은 고독감에 사로 잡히면서도 심사숙고 끝에 일대 용기를 내 제조업 투자에 대해 최종 결단을 했다.
-단일 주업종의 비율이 70%를 넘는 회사는 오늘의 기업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 CEO에게 필요한 요건은 덕망, 지도력(리더십), 신망, 창조성, 판단력, 추진력, 책임의식이다.
-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
- 고생스러운 기업 경영의 일을 자손에게까지 억지로 강요하고 싶지 않은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사업 탓으로 숱한 파란과 곡절을 겪으면서 갖은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1950년 한국전쟁중 기업 회생을 위해 겪었던 고생, 1960년 4.19를 계기로 부정 축자로 낙인찍혔던 일, 1961년 5.16으로 재산을 국가에 환수당하는 일을 겪었다.
- 오랜 습관으로 나는 반드시 메모를 하는데, 이것이 일을 챙기고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 신상필벌은 필요하다.
◆반도체 사업 진출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다. 이 쌀이 없으면 현대 산업 전체가 멈춰 설 수밖에 없다. 우리가 독자적인 기술을 가지지 못하면 영원히 기술 강대국들의 하청 기지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반대했다. 삼성 내부와 정부, 학계 모두가 반도체 진출을 반대했다. 일본의 미쓰비시 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를 하면 망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나의 이 결정이 삼성의 장래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임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했다. 그래야만 우리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나는 반대로 생각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 남들이 어렵다고 포기하는 길에 기회가 있다고 믿었다. 이것은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승부였다."
-내 나이 일흔을 넘겼다. 이 나이에 무슨 부귀영화를 더 누리겠다고 이 험난한 길을 택하겠는가. 오로지 우리 후손들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 기반을 물려주고 싶다는 일념뿐이었다.
"자원이 빈약한 우리 나라가 살아남을 길은 오직 두뇌를 사용하는 고부가가치 산업뿐이다. 반도체는 그 길의 입구이자 출구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기술의 진보 속도는 눈부시게 빠른데, 우리가 예전 방식대로 느긋하게 움직여서는 영원히 뒤처질 수밖에 없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마음으로 전력투구해야 한다."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기업가의 직무유기다.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얻은 기술과 인재는 남는다. 그것이 다음 성공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 사업(事業)은 보국(報國)이며 인재가 제일이다
기업은 국가와 사회에 유익한 것이어야 하며, 그것이 국가에 보탬이 되고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때에 비로소 기업의 존재 의의가 있는 것이다."
"나는 기업을 경영하면서 한 번도 개인의 영달을 목적으로 삼은 적이 없다. 오로지 국가 경제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왔다."
"의심이 가는 사람은 쓰지 말고, 일단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 (疑人勿用 用人勿疑, 의인물용 용인물위)
"내 일생의 80%는 인재를 모으고 교육시키는 데 보냈다."
"운(運), 둔(鈍), 근(根). 사람은 능력 하나만으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운도 따라야 하고, 미련할 정도로 우직하게 버티는 둔함도 필요하며, 뿌리 깊은 끈기도 있어야 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어제의 성공에 안주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위기다."
"담장을 낮게 쌓지 마라. 도둑이 들어오기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이 해이해지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경제가 발전하려면 기업가의 도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부정한 방법으로 쌓은 부는 모래성이나 다름없다."
- 동방생명의 매수를 계기로 동방생명이 그 주식의 100%를 보유하고 있는 동화백화점도 자동적으로 인수하게 됐다. 현재의 신세계백화점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백화점은 말뿐이고 진열장을 임대받은 상인들의 집합체에 불과했다.
나는 직영제를 채택했다. 상품지식이 풍부한 전문가가 품질을 검토해 상품을 구입하기 때문에 중간 마진이 배제돼 그만큼 판매가격이 저렴해진다.
이병철(1910~1987). 경남 의령 출생. 가족 : 박두을(배우자), 이인희(딸), 이맹희(아들), 이창희(아들), 이건희(이건희), 이명희(딸), 이숙희(딸), 외손자 조동만, 외손자 조동길, 손녀 이미경, 손자 이재현, 손자 이재관, 손자 이재찬, 손자 이재용, 외손자 정용진, 손녀 이부진, 손녀 이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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