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이민주 버핏연구소 대표] 19세기말과 20세기 초로 이어지는 중국 청나라를 쥐락펴락했던 서태후(西太后, 1835~1908)가 입신의 출발을 한 것은 중국 황제 함풍제의 후궁이 되면서다.
1851년의 초여름, 구름처럼 많은 후궁 후보들이 황제 앞에서 경선 의식을 치를 때 몰락한 관리의 딸인 16세 서태후가 간택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그런데 서태후는 창의적 발상으로 황제의 눈을 끄는데 성공했다.
▲ 이민주 버핏연구소 대표 |
후궁 후보들은 커튼 뒤에서 대기하다가 환관이 막대기를 툭툭 치면 커튼에서 나와 함풍제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한 후 미소를 지은 다음, 몸을 돌리고 몇 초 후에 밖으로 나가야 했다.
황제가 후궁 후보를 심사하는 시간은 불과 30초였다.
서태후는 다른 후보와 같은 방식으로 해서는 승산이 사실상 없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녀는 방법을 달리했다.
환관이 서태후에게 무대 위로 나오라고 막대기를 툭툭 쳤다. 그런데 서태후는 꼼짝 않고 가만히 있었다. 당황한 환관이 막대기를 몇 번 더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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