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이민주 버핏연구소 대표가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에 게재한 칼럼입니다. <기획회의>는 출판계의 경향과 소식, 서평을 담은 격주간지입니다]
우리는 빅데이터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당신은 데이터의 주인이 아니다』 브루스 슈나이어 지음. 이현주 옮김. 빈비. 2016년
내가 아는 어느 기업의 CEO가 해외 여행을 위해 국내의 어느 항공기에 탑승해 기내에서 겪은 일이다.
식사 시간이 되자 스튜어디스가 다가 오더니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엔초비(Anchovy)도 드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엔초비는 쉽게 말해 ‘이탈리아식 멸치젓’인데 이 CEO는 엔초비라면 ‘사족’을 못쓸 정도로 좋아한다. 이 CEO는 자신이 항공기 기내에서 예상치 않게 엔초비를 먹게 될 줄을 몰랐다며 이 경험에 대만족을 표시했다.
이 CEO는 자신이 엔초비를 좋아한다고 항공사측에 밝힌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이 항공사는 어떻게 이 사실을 알아냈을까?
해답은 빅데이터(Big Data)에 있다.
이 CEO가 국내에서 거주하면서 자주 가는 식당, 빈번하게 주문하는 음식에 관한 정보가 고스란히 빅데이터로 가공돼 항공사측에까지 전달된 것이다.
'스마트폰, SNS, 검색 등을 통해 생성되는 방대한 데이터를'를 의미하는 빅데이터가 우리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강력하다. 내 알고 지내는 CEO가 겪은 일화는 빅데이터가 우리에게 미치는 가공할 영향력의 일각에 불과하다.
빅데이터는 우리를 어느 정도로 감시하고 있고, 우리는 이것을 피해갈 수 있을까? 빅데이터가 완벽히 지배하는 미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IT전문지 '와이어드'에 의해 '세계 최고의 보안 전문가'로 명명된 브루스 슈나이어(Bruce Schneier)가 저술한 <당신은 데이터의 주인이 아니다>는 이 궁금증에 대해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슈나이어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우리의 일상을 감시하고 있는 3대 기업으로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을 지적하고 있다. 이들 3대 기업이 우리를 감시하는 실상을 들여다보면 섬뜩할 정도이다.
저자에 따르면 구글은 우리가 어떤 사안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우리보다 더 잘 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우리가 과거에 저지른 행동을 잊기도 하지만 구글은 우리가 한번 이력을 남기면 영원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구글은 개인이 어떤 종류의 포르노를 검색하는지, 무엇을 걱정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는지를 알고 있다. 구글은 결심만 한다면 누가 자신의 정신건강을 걱정하고 있고, 탈세를 계획하고 있고, 정부의 특정한 정책에 항의할 계획을 갖고 있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저자는 자신은 구글의 검색 기능을 가능한 이용하지 않고 있지만, 결과는 어차피 구글의 승리임을 알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구글은 애널리틱스를 이용해 사이트의 방문자를 추적하며, 그 사이트들은 나를 추적하고 있다. 나는 구글의 지메일도 사용하지 않지만 구글은 내가 보내는 이메일의 3분의 1 정도는 갖고 있다. 내가 연락하는 사람들중 다수가 지메일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 많은 기업과 조직이 도메인 이름, 주소를 갖고 있으며, 구글은 이들의 이메일을 관리해준다. 나는 구글이 나를 잘 추적하지 못하도록 브라우저에 여러가지 차단 기술을 사용하지만, 구글은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는내 시도를 교묘히 피해갈 기술을 연구중이다."(43페이지, 57페이지)
구글측도 빅데이터를 활용해 개인 사생활을 추적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구글의 CEO인 에릭 슈미트는 2010년 어느 인터뷰에서 "우리는 당신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어디에 있었는지도 알고 있다. 우리는 지금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어느 정도 알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개인 사생활 감시와 추적에 관한한 페이스북도 만만치 않다. 페이스북을 이용한다는 것은 당신의 기호와 취미 등의 개인 정보를 완전히 페이스북측에 넘겨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당신이 페이스북에 게시물을 올리지도 않고, 누군가와 친구가 된 적이 없는데도 페이스북은 당신을 추적할 수 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나는 페이스북에 전문가 페이지는 갖고 있지만, 프라이버시를 위해 개인 계정은 갖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페이스북은 내가 페이스북의 '좋아요' 버튼으로 페이지를 방문할 때마다 나를 추적한다. 페어스북은 태그된 사진들을 근거로 누가 내 친구인지 알아맞힐 수 있으며, 여러 데이터 브로커 업체에서 사들인 다른 정보에 그 정보를 연결할 것이다"(57P)
아마존도 이 사안에 관한한 ‘무서운’ 기업이다. 당신이 킨들로 책을 읽는다면 아마존은 당신이 언제 책을 읽기 시작했는지, 얼마나 빨리 읽었는지, 그리고 책을 한번에 다 읽었는지 아니면 매일 조금씩
읽었는지를, 앞부분을 뛰어 넘었는지를 안다. 아마존이 당신의 독서 습관을 체크하고 있다는 경고 신호는 어디에도 없지만 아마존의 추적은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다.
빅데이터가 인류 역사에 등장한 것은 2007년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은 것이 계기가 됐다. 빅데이터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도 그 무렵이다.
불과 9년만에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기업과 정부에 자발적으로 내주는 형편이 됐다.
애플의 아이폰이 나오기 전까지 기업이나 정부가 개인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어렵고 상당한 비용이 수반됐다. 동독 정부는 10만 2,000명의 비밀 경찰을 두고, 1,700만명의 국민을 감시했는데, 민간인 정보원을 포함하면 국민 66명당 1명꼴이었다. 동동 정부를 이렇게 방대한 규모의 감시 요원을유지하느라 국가 재정이 거덜날 정도였다.
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정보를 수집하고 저장하는데 비용이 들다보니 당시의 기업은 필요한 한에서만 정보를 저장했다. 신용카드 회사들은 청구서 작성에 필요한 고객의 거래 정보만을 수집했다. 오프라인 매장은 고객 정보를 거의 수집하지 않았고, 통신 판매 회사들도 이름, 주소 정도만 수집했다. 그리고 발송 비용을 아끼느라 홍보 발송 명단에서 누군가를 삭제했다.
그런데 2007년 아이폰(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기업과 정부는 스마트폰, SNS, 검색이 만들어내는 어마어마한 빅데이터를 저렴하게 활용할 수 있다. 각국 정부는 동독 정부처럼 그렇게 많은 감시 요원을 둘 필요도 없다. 이는 세상을 본질적으로 변화시켰다.
빅데이터에 의해 낱낱이 까발려지고 있는 우리의 사생활과 개인 정보를 보호할 대책은 있는 걸까?
저자는 '빅데이터를 악용하는 기업의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라' '법에 따라 빅데이터 활용 기업을 표적 감시하라' '데이터 수집 규제법을 제정하라'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방안이 효과를 거둘 것 같지는 않다. 마땅한 해결책이 사실상 없는 셈이다.
우리의 현실적인 대응법은 딱 한가지 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빅데이터가 완벽하게 개인의 일상을 통제하게 될 미래의 낯선 세상에 적응하는 법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이는 사실상 대책이 없다는 말과 해석해도 된다. 우리는 미래에 어떤 삶을 보내게 될까? 아니 우리의 자손은 빅데이터의 사생활 침해가 그나마 덜한 지금의 우리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세상이 갈수록 암울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이 책의 마지막 책장이 넘어갔다.
이민주 소장은?
<지금까지 없던 세상>(쌤앤파커스 펴냄)의 작가이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미 퍼듀대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인생, 투자, 경영을 주제로 이메일 레터 『행복한 투자 이야기』를 보내고 있다. 투자 투자 및 기업교육 전문회사인 버핏연구소 대표로 있으며, 버핏연구소 설립에 앞서 한국일보 기자로 17년을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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