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란 돈을 벌기 위한 행위다. 잃기 위해 투자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돈의 가치를 결정하는 변수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투자할 때 단 두 가지 변수를 꼽으라면 아마도 그것은 금리와 인플레이션이 될 것이다. 이 두 가지 변수가 돈의 가치를 직접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금리란 돈이 거래되는 가격을 말한다. 돈도 일반 상품이나 서비스처럼 거래된다. 단지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돈은 빌리고 빌려주는 방식으로 거래되고, 그 가격이 바로 금리다. 금리는 이런 가격 기능뿐만 아니라 시간의 가치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자에 대한 경제학적 개념을 정립한 경제학자 어빙 피셔는 이자에 대해 『이자는 사회가 1달러의 미래 소득보다 1달러의 현재 소득을 얼마나 선호하는지 나타내는 지수다』고 말했다. 현재 돈의 가치가 높으면, 즉 금리(혹은 이자)가 높으면 사람들은 현재의 1달러를 선호할 것이고, 반대로 금리가 낮으면 사람들은 미래의 1달러를 선호할 것이다.
2001년부터 시작된 저금리는 현재의 돈보다는 미래의 돈을 선호하게 만들었다. 이에 투자자들은 예금보다는 부동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자가 낮아 돈을 빌리는 비용이 적어지자 적극적으로 대출을 받아 부동산 투자에 나섰다. 주식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주목받았다. 저금리로 은행 이자가 적어지자 사람들은 주식형 펀드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주식 자산 매입에 나섰다. 사실 이런 과정은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는 손실을 안겨 주었다. 원금이 보장되는 은행 상품에 가입한 사람들이 손실을 안겨 주었다니 무슨 말일까.
▶ 장기 상품의 「최대 적」은 인플레이션
이자의 관점에서 보면 돈의 거래는 사실 제로섬 게임이다. 이자를 내는 측이 있으면 반드시 받는 측이 있어야 한다. 「거래의 상대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어떤 거래도 일어날 수 없는 법이다. 은행을 매개로 은행에 돈을 빌려준 측(예금 가입자)에서 돈을 빌린 측으로 부(富)가 이전된 것이다. 저금리는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의 재산을 주식과 부동산을 가진 사람에게로 이전하는 역할을 했던 셈이다.
저금리 시대에 지나치게 예·적금 위주로 자산을 운용하는 사람들은 결국 주식과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들의 자산만 늘려주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사진 제공=픽사베이.
이번에는 인플레이션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인플레이션이 주는 교훈을 우리는 예전의 보험 회사들이 판매한 교육 보험과 장수 보험, 혹은 백수 보험에서 잘 발견할 수 있다. 교육 보험과 장수 보험은 미래에 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상품들이었다. 하나는 교육 자금이었고, 다른 하나는 노후 자금이었다.
보험 회사들은 이들 상품을 판매해, 바꿔 표현하면 고객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면서 낮은 금리를 적용했다. 장기 상품이므로 시중 실세 금리보다 낮게 책정했던 것이다. 이렇게 조달한 돈으로 일부 국내 대형 보험 회사들은 전국 요지에 사옥을 지었다. 이는 바꿔 말하면 물가와 시간을 이용해 고객들의 돈을 합법적으로 헐값에 가져 온 것이다.
교육 보험과 장수 보험의 교훈은 인플레이션 위험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보험같은 장기 상품의 최대의 적은 금리도 아니고 정부 정책도 아니다.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은 직접적으로 화폐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 물가가 오르면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금리를 바라볼 때도 반드시 인플레이션을 고려해야 한다. 만일 은행 이자가 4.6%인데 물가가 1년 동안 4% 정도 올랐다고 가정하자. 이자 소득세를 감안할 경우 은행에 돈을 넣어둔다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손해를 본다는 의미가 되는 셈이다.
인플레이션의 역설을 보여주는 나라가 옆 나라 일본이다. 일본은 3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연 0.35%다. 1000만 원을 맡기면 3년 후 3500원의 이자만 받을 뿐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전체 가계 자산에서 예금이 52%, 생명보험이 15%를 차지한다. 이들 상품은 대개 원금이 보존되는 저축성 상품들이다. 자본주의 역사상 최저 금리를 기록하고 있는데도 저축 상품 위주의 자산 운용을 보이는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발견하기 어렵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워낙 특이한 현상이다 보니 일본의 이런 사례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흥미로운 연구 대상 중 하나라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크게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일본 노년층의 저축 패턴과 디플레이션 때문이다.
일본은 50대 이상의 노년층이 일본 금융 회사에 맡겨 놓은 돈의 60%를 보유하고 있다. 노년층은 자산의 축적자가 아닌 자산의 소비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자산이 줄어드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원금이 깨지는 상품에 대한 수요가 매우 적은 것이다. 투자형 상품에 가입하더라도 월이자 지급식 펀드에 주로 가입한다. 일본 최대 규모의 펀드들을 주로 「월 이자 배분형」으로 채권형 펀드들이다.
▶ 「자원 대국」 투자로 위험 분산하라
또 하나는 디플레이션이다. 일본 경제는 1989년 거품 붕괴 후 자산 가격의 대폭락에 따른 힘겨운 디플레이션 시기를 보냈다. 금리가 제로(0)인데 물가가 하락했으니 정작 현금성 자산의 가치는 올라간 것이다. 원금 보전을 유지하면서 그동안 벌어 놓은 돈으로 살아야 하는 노인들의 입장에선 물가가 하락해 오히려 살기 좋아진 것이다.
지금까지 간략하게 금리와 인플레이션에 따라 주식과 부동산, 그리고 현금성 자산이 투자에서 차지하는 우선순위가 어떻게 바뀌는지 살펴보았다. 결국 예금이나 적금은 안전하고 주식은 위험하다는 발상은 별 의미가 없다. 우리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현금성 자산이 알고 보면 물가상승률에 가장 취약하기 때문이다.
주식과 부동산과 같은 자산이나 현금성 자산 모두가 투자의 기상도에 따라 처해 있는 위험이 다르다. 그 위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앞서 얘기한 금리와 인플레이션인이다.
하지만 금리와 인플레이션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거기에 대응하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금리가 낮아지는 현상이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도 그렇다.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져 물가가 하루아침에 오르지도 않는다.
따라서 시차가 있더라도 충분히 우리에겐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있다. 지금처럼 금리가 낮고 물가상승률 압박이 심한 환경에서는 주식 자산, 그리고 물가 상승의 수혜를 볼 수 있는 분야나 국가 등을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편입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로 브라질이나 러시아 같은 자원 대국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 이상건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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