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좀비기업 정리에 칼을 뽑아든 가운데 증권가가 술렁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전년 대비 큰 폭으로 증가한 가운데 무더기 상장폐지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소문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주장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일각에서는 근거 없는 억측까지 제기되고 있어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중소기업에 대한 정기 신용위험평가를 진행, 175개 기업을 구조조정 대상 기업으로 선정했다. 이는 전년 대비 40%(50개사) 증가한 규모다.
특히 이 중 105개 사는 신용위험평가 등급 4단계 중 가장 낮은 D등급을 받았다. D등급은 경영 정상화 가능성이 없는 기업을 뜻한다. 나머지 70개사는 C등급을 받았다. 다만 금감원은 해당 기업들의 원활한 경영 정상화를 위해 기업 명단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국내 기업들의 건전성을 높이고 자본시장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진행된 이번 조치가 투자자들에게는 오히려 혼란을 촉발하는 분위기다. 리스트를 발표하지 않자 일부 투자자를 중심으로 '금감원 살생부'에 대한 억측이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무더기 상장폐지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 확인 결과 이 같은 주장은 현실 가능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단 C등급과 D등급에 선정된 기업 중 상장사는 단 한 곳도 없다"며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D등급 기업도 퇴출이나 해체가 아닌 자체 정상화나 법원의 기업회생 절차 신청을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금감원의 조사 결과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대비 C,D 등급을 부여 받은 기업이 많은 산업군의 경우 해당 산업군에 속한 상장사들 역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는 추측에서다. 금감원에 따르면 최근 부실우려가 높은 수출 관련 업종에서 구조조정 대상기업 증가가 도드라졌다. 업종별로 △식료품(233%) △자동차(100%) △기계 및 장비(56%) △전자부품(36%) 등의 순으로 구조조정 기업 증가율이 높았다.
더불어 한국은행이 발표한 '한계기업' 기준도 주목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정부가 상시적 기업 구조조정을 시급히 처리해야할 과제로 꼽은 가운데 재무건전성이 취약한 한계기업의 경우 구조조정 수술대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한계기업'이란 최근 3년 연속 이자보상비율(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비율)이 100% 미만인 기업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은행의 '한계기업' 기준에 부합하는 기업은 전체 상장기업 중 270개에 달한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향후 정부가 어떤 기준으로 구조조정 기업을 선정할지는 미지수"라며 "다만 구조조정에 대한 의지가 강한 만큼 한국은행 한계기업 정의에 부합하면서 펀더멘털이 안 좋은 기업은 투자에 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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