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의 2016년 3월호에 게재된 이민주 버핏연구소 대표의 서평 <인간은 필요없다>입니다. <기획회의>는 출판계의 소식과 신간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은 필요없다>. 제리 카플란(Jerry Kaplan) 지음. 신동숙 옮김. 한스미디어. 2016.
자동차로 한적한 시골의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길가에 토끼, 노루 같은 동물의 시체가 너 부러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들 동물은 「바퀴 달린 거대한 쇳덩이」(자동차)가 쏜살같이 자신에게 달려오면 무방비 상태로 멍하게 있다가 치어 죽는다. 한번도 겪어 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실은 이것이 지금 인류가 처한 상황이다. 인공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필두로 하는 신기술이 맹렬한 속도로 우리를 향해 돌진해오고 있다. 그 속도가 하도 빨라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500만년의 인류 역사상 이런 일은 한번도 없었다.
인류는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가? 아니면 신기술의 노예로 전락해 멸종 단계에 접어들 것인가?
미 스탠퍼드대 법정보학 센터의 제리 카플란 교수가 낸 <인간은 필요 없다>는 이 문제를 흥미진진하게 탐험하고 있다. 카플란 교수는 미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인공 지능과 컴퓨터 언어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신기술에 기반한 스타트업을 창업해 성공적으로 매각한 적이 있다.
카플란 교수에 따르면 신기술의 발전이 급속히 이뤄지고 있는 배경에는 「체험적 학습법」이 연구 방법의 표준으로 채택된 것과 관련이 있다. 「경험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체험적 학습법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흩어져 있는 빅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정답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여기에 대비되는 방법으로는 논리적 학습법이 있는데, 이는 「만약 A하면 B를 하라」는 식으로 프로그램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논리적 학습법은 엄청나게 많은 경우의 수를 일일이 프로그래밍해야 하기 때문에 성능이 뒤떨어졌고 불편했지만 2007년 이전까지는 신기술 연구의 표준 방식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체험적 학습법을 구현할 빅데이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7년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아이폰이라는 스마트폰을 내놓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스마트폰은 SNS, 전자 상거래, 인터넷을 폭발적으로 촉진하면서 광범위한 빅데이터를 만들어냈고, 이에 따라 체험적 학습법이 신기술 연구의 표준으로 채택된 것이다.
체험적 학습법에 기반한 신기술의 발전 속도는 혁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인공 지능과 빅데이터는 척척 해내고 있다. 이제 인공 지능과 빅데이터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고 수초만에 『젊은 사람들 여러 명이 미소를 지으면서 카드 게임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묘사할 수 있다. 인공 지능과 빅데이터는 과일이 적당하게 익었는지, 아직 풋과일인지도 구별해낸다. 이들이 퀴즈에서 인간을 이긴지는 오래 전이다.
기술 발전은 인간에게 좋은 일이 아닌가?
문제는 신기술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과일의 성숙도를 구별해내는 신기술은 이미 상용화돼 있다. 미 캘리포니아주 옥스나드에 본사를 둔 애그로봇(Agrobot)이 내놓은 상업용 로봇은 적당하게 익은 딸기만 골라 수확한다. 이 로봇을 도입한 딸기 농장은 멕시코 노동자들을 대거 해고했다.
구글이 주도하고 있는 자율 주행차는 운전 기사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카플란 교수는『자율 주행차는 운전중에 꾸벅꾸벅 졸지도 않고, 술에 취하지도 않고, 임금 인상을 요구하지도 않는다』며 『미국의 장거리 트럭 운송 기사 170만명과 장거리 트럭 이외의 차량 운송에 관련된 570만명(합계 740만명)은 자율 주행차 도입시 우선적으로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카플란 교수는 신기술이 조만간 대체할 수 있는 분야로 애완견 산책, 음식 조리, 식탁 정리, 집안과 건물의 페인트칠, 침대 정리, 빨래와 바느질, 교통 정리 등을 거론하고 있다.
신기술로 일자리를 위협받는 직종은 단순 육체 노동직만이 아니다. 변호사, 의사, 항공기 조종사, 기자 같은 전문직도 안심할 수 없다.
기업들간에 간단한 계약서를 체결할 때는 변호사의 도움이 거의 필요하지 않거나 아예 없어도 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항공기 조종사도 위험하다. 항공기 사고의 80%는 조종사의 실수로 빚어지는데, 인공 지능은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다.
심지어 의사도 위험하다. 미 인튜이티브 서지컬사에 개발한 다빈치라는 인공 지능 로봇은 의사보다 정교한 손놀림으로 환자를 수술한다. 인튜이티브 서지컬사는 『다빈치는 인간 의사의 조종을 받아 수술을 도와 주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수술의 전 과정을 다빈치가 주도하는 것은 시간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여기에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이 책의 미덕은 이 문제에 대해 비록 초보적인 수준이기는 하지만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이 책이 그간 신기술 관련서들이 문제 제기에 그쳤던 것과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카플란 교수는 「직업 대출(Job mortgage)」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다. 직업 대출이란 구직자가 잠재적인 고용주(기업)의 보증을 받아 정부나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고 교육을 받는 것이다. 그렇지만 고용주는 구직자를 반드시 고용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아니고 구직자도 반드시 그 직장에서 일하겠다고 서약하는 것도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구직자는 미래의 일자리에 지원하고, 고용주는 일정 기간에 그 사람을 충원할 의향이 있다는 사실을 담은 의향서를 발행한다. 고용주는 적당한 기술이 있는 직원을 뽑는데 어려움이 있으므로 - 오늘날처럼 기술 변화가 심할 때는 더욱 그렇다 - 직업 대출 보증서 발행을 원할 것이다. 모집 예정인 직원 수만큼만 이런 고용 의향서를 발행할 수 있으므로 직업 대출 의향서의 숫자는 자연적으로 제한된다. 구직자는 교육을 마친 후 해당 기업에 채용되면 좋고, 그렇지 않고 다른 기업에 취업하면 대출금의 일정액을 갚으면 된다.
실제로 미국 시카고에 본사를 둔 에듀케이션 에쿼티라는 교육 기업은 특정 교육 프로그램에 등록한 학생들에게 소득과 연계된 대출을 해준다. 직업 대출의 초기 형태인 셈이다.
인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였다. 신기술의 파괴적 속성이 인류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여기에 대해 인류가 해법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궁금하다면 이 책은 그 실마리를 제공한다. 원제 Humans need not apply.
이민주 소장은?
<지금까지 없던 세상>(쌤앤파커스 펴냄)의 작가이자 투자 및 경제 교육기업 버핏연구소 대표이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미 퍼듀대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인생, 투자, 경영을 주제로 이메일 레터 『행복한 투자 이야기』를 보내고 있다. 버핏연구소 설립에 앞서 한국일보 기자로 17년을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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