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구조에 따라 시장도 변한다
10대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가 1980년대 가요 「풍선」을 부른 이유는. 서울 강남의 고급 백화점에서 남성용 프리미엄 진(고급 청바지)이 잘 팔리는 이유는. 의대생들이 치과와 성형외과를 선호하는 이유는. 울산 지역의 집값이 부산 지역을 따돌린 이유는. 서울 고급 주택가에서 중대형 아파트 가격이 소형 아파트보다 비싼 이유는. 「맘마미아」와 같은 복고풍 뮤지컬이 뜨는 이유는. 쏘나타와 그랜저 같은 중대형 자동차가 자동차 시장의 메인 상품으로 자리 잡은 배경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예상을 뒤엎고 막판 역전에 성공했던 이유는. 요즘 20대가 취업난에 시달리는 배경은.
이 9개 질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겉으론 보기엔 사뭇 다른 질문인데, 이들 사이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인구(人口) 구조에 따른 시장의 변화를 반영한 현상이다. 인구란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등 인간의 삶 전체의 토대를 이룬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인구란 기업의 입장에선 소비자이자 노동력을 공급하는 생산자다. 주택 시장의 관점에서는 주택 수요층이다. 간단하게 생각해 보자. 노인들이 많은 사회와 40~50대 중장년층이 많은 사회에서 주택 수요는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40~50대 중장년층은 132~165㎡형(40~50평형)대 중대형 아파트를 선호한다. 그러나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킨 70대 노부부가 132~165㎡형대를 선호할 이유는 드물다. 시쳇말로 집이 커서 노구를 이끌고 집안 청소하기도 힘들다.
한 사회의 인구 구성에서 가장 주목해 봐야 할 것은 숫자가 가장 많고 경제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누구냐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숫자가 많고 영향력이 큰 집단은 소위 베이비 붐 세대라 불리는 중장년층이다. 6·25전쟁 이후 태어난 세대들은 현재 중장년층에 접어들면서 사회 각 영역에서 커다란 힘을 행사하고 있다. 예상을 뒤엎고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사실 386으로 대표되는 30~40대의 반란 때문이었다. 이들은 학창 시절 민주화 운동을 경험했기 때문에 3김(金)으로 상징되는 구시대 정치인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었고 숫자가 많은 이들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몰표를 던졌던 것이다.
최대 영향력 집단은 베이비붐 세대
자동차와 주택은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지위재(地位材)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들 시장에서 중대형 자동차와 주택이 메인 시장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중장년층의 가족 구성 및 경제력과 밀접한 연관 관계를 갖고 있다. 이들은 대개 4인 가족으로 구성돼 있다. 최근 우리나라 가족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보면, 가족 간에도 서로 생활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식이 자리를 잡았다. 가족 간의 적정한 독립성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중대형 크기의 아파트는 돼야 한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4인 가족이 편안하게 이동하려면 자동차의 크기가 최소한 중대형은 돼야 한다. 게다가 이들은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추고 있다. 다수의 소비자인 중장년층이 중대형을 선호하고, 이것을 매입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중대형 시장이 자동차와 주택 시장에서 주류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반대로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오히려 작은 자동차와 아파트가 인기를 끌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베이비 붐 세대들은 「마이 홈 마이 카」 1세대들이다. 또한 중산층 신화의 주인공들이다. 내 집이 있고 자동차가 있으면 중산층이라는 생각을 갖고 젊은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이다.
한 해에 90만 명가량이 태어나면서 대량 출산 시대를 연 58년생들이 결혼을 하기 시작했던 시점은 1980년 중반이었다. 당시 남자들의 결혼 적령기가 27세였고 여성들의 경우 27세가 넘으면 노처녀 소리를 듣던 시절이었다. 1958년 이후 세대들이 결혼하면서 이들은 생애 최초의 내 집과 자동차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딱히 돈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이 선택했던 자동차와 주택은 소형들이었다. 그래서 1980년대 말 부동산 값 폭등 시 시세를 이끈 것은 2000년대 초와 달리 소형 아파트들이었다. 소형 자동차 시장의 깨지지 않은 신화를 만들어 냈던 기아자동차 프라이드의 빅 히트의 배경에도 30대에 접어들기 시작한 베이비 붐 세대들의 영향이 컸다. / 이상건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
최근 20대들의 취업난도 이런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경제는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고성장 국면에서 저성장 국면으로 전환됐다. 일부에서는 과거의 고성장 시대의 향수를 잊지 못해 성장 예찬론을 펼치고 있지만 이는 설득력이 별로 없는 주장이다. 어떤 나라든지 30년 이상 고성장을 이루기는 어렵다. 현대 자본주의 역사에서 30년 이상 고성장을 이룬 국가는 일본 한국 중국 등 열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다.
인구 변화에 투자 트렌드도 달라져
고성장 이후에는 장기적으로 저성장 국면으로 전환되는 게 세계 경제 발전사의 경험이다. 저성장이 되면 고성장 시대만큼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저성장 국면으로 전환되는 시점에 중장년층이 사회적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자녀 교육과 노후 대비 등으로 많은 자금이 소요되는 연령대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회사에 오래 머물려는 경향이 강하다. 일자리 창출력은 기존에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물러나야 새로운 사람들, 즉 젊은 층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기란 쉽지 않다. 어떤 나라든지 고성장에서 저성장 국면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청년 실업률이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이 딱 그렇다(여담이지만 청년 실업률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투자와 관련해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주식 자산에 대한 수요의 증가 측면을 잘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40대 이전 인구가 주류를 차지할 경우에는 부동산 자산이 가계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이들이 생애 최초의 내 집을 마련하고 대출금을 갚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미국도 베이비 붐 세대들이 40대에 진입하기 전인 1970년대 말까지는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60%였다. 그러나 베이비 붐 세대들이 중장년층에 접어들면서 주식에 대한 투자 비중을 늘리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현재 금융자산이 부동산 자산보다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통계청이 2007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77.8%나 된다. 하지만 최근 주식형 펀드의 인기에서 볼 수 있듯이 중장년층이 노후에 대비해 적극적으로 자산운용을 하기 시작하면 앞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가계 자산에서도 금융자산과 주식 자산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인구 구조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인구는 삶의 기초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변하는 속도도 느리다. 자연재해나 전쟁이 없으면 갑자기 사망률이 증가하거나 반대로 출생률이 줄어들지도 않는다. 결국 투자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투자의 성격도 변하는 법이다. 이것이 바로 인구 통계와 구조가 투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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