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는 기간에 따라 장기와 단기로 구별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단순한 기간 구분법에 불과한 장기 투자와 단기 투자란 단어에는 가치 판단의 잣대가 개입돼 있다는 사실이다. 장기 투자는 좋은 것 즉, 선(善)이고 단기 투자는 나쁜 것, 다시 말해 악(惡)이 라는 것이다. 진정 세상의 이런 잣대처럼 장기 투자는 옳고 단기 투자는 그릇된 것일까.
또 이런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장기 투자가 올바른 것이라면 왜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기 투자를 하는 것일까. 실제 세상에서 장기 투자가 단기 투자보다 더 성과가 좋다는 근거는 존재하는 것일까.
사실 투자에서 장기 투자만큼 상투어가 된 단어도 드물 것이다. 예를 들어 주식형 펀드에 가입했다고 치자.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아 금융 회사에 가보면 직원들은 ‘길게 보시고 투자 하세요’라고 말한다. 시간이 흐르면 좋아질 수 있으니 장기 투자를 하라는 이야기다. 이번에는 반대로 시장이 좋을 때 가서 물어보자. 아마도 ‘지금은 장기 투자를 하기에 적기’라는 말을 들을 가능성이 높다. 시장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모두 장기 투자를 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극히 단순한 형태의 ‘장기 투자= 선(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거나 질문에 ‘면피’를 할 목적으로 시도 때도 없이 ‘장기 투자를 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장기 투자는 단기 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나은 성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불행하게도 인간의 본성에는 부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상대적’이라는 단어에 대해 먼저 짚어 보자. 단기 투자로 빼어난 성공을 거둔 투자자들도 적지 않다. 데이트레이더 중에서는 매일 자신의 목표-예를 들어 2%-를 정해 놓고 이 목표가 실현되면 모든 포지션을 정리해 내는 식으로 꾸준한 수익률을 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평균의 개념을 적용해 보면, 이런 사람은 극히 일부분이다. 고수(高上)가 고수인 것은 그런 사람들이 정말 적기 때문이다. 고수가 많아지면 더 이상 고수의 의미는 없어진다. 일부 단기 투자자들 중에는 자신과 고수를 착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부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극소수의 고수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기 투자를 하면 할수록 돈을 잃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분야의 가장 유명한 연구 조사는 미국의 테렌스 오딘 교수가 진행한 것이다. 오딘 교수는 6년간 6만 명을 대상으로 투자자들의 투자 패턴을 분석한 결과 이런 결과를 얻었다. ‘주식 매매를 많이 하면 할수록 개인 투자자들의 수익률은 떨어졌다.’ 이 정도 기간과 표본은 아니지만 국내에서 이뤄진 몇몇 연구 조사도 오딘 교수와 같은 결론을 얻었다.
사진=픽사베이
장기 투자 vs 인간 본성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입으로는 장기 투자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항상 그것도 자주 단기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일까. 앞서 얘기했듯이 장기 투자가 단기 투자에 비해 좋은 성과를 거둘 확률이 높지만 결정적인 단점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기 투자에 주로 활용되는 방법은 차트를 통한 기술적 방법이다. 기술적 방법은 일종의 주가 변화 패턴을 찾아 자신의 투자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패턴화를 찾는 행위(pattern-seeking)는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9번 성공했다 하더라도 1번의 실패가 치명타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인간이 패턴을 추구하고 그것을 선호한다는 사실은 ‘분할뇌 환자’에 대한 연구로 밝혀졌다. 분활뇌 환자들은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의 다리인 뇌량이 절단된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 실험의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분할뇌 환자들은 오른쪽 시야에 들어온(좌뇌에서 정보를 처리한) 자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말했지만, 왼쪽 시야에 입력된 대상에 대해서는 그 이름을 정확히 말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왼손은 정확히 그 대상을 짚어냈다.
그러나 ‘당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물으면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또 오른쪽 뇌 환자들에게 웃으라는 신호를 보내면 환자의 왼쪽 뇌는 실험에 참석한 과학자들에게 우스운 사람들이라고 얘기했다.
뇌량이 절단되면 이처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면서도 어떤 이유나 관계를 들어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거나 행동을 한다. 즉, ‘실제로는 전혀 모르는 행동의 원인을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그 상황을 이해하려고 한다(신경과학자 조지프 르두 교수)’. 분할뇌 환자들만 이렇게 생각한다고 여기는 것은 매우 좁은 판단이다.
‘패턴’ 추구가 장기 투자 막는다
인간이 자신이 잘 알지 못하면서 그것에 마치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판단하는 능력, 즉 ‘패턴 추구 행위’는 인간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이다. 원시시대 우리 조상들에게 패턴 추구 행위는 생존의 문제였다. 식물을 채집할 때 독(毒)이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일정 패턴을 보고 구분하는 것은 꼭 필요한 능력이었다. 사냥을 잘하기 위해서도 동물의 자그마한 행동 변화에서 패턴을 읽어내야만 했다. 인간들은 계속해서 이런 패턴화 능력을 키워 왔고, 이를 후세에 물려줬다.
하지만 이런 패턴 추구가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곳이 주식시장, 복권, 도박장 등이다. 확률적으로 보면 승산이 매우 적은 것이 분명한데도 사람들은 패턴을 찾는다. 길거리를 걸어가다 벼락을 맞아 죽고 다시 살아나 또 벼락을 맞고 살아날 확률이 로또 복권의 당첨 확률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로또 번호에서 일정 패턴을 부여하려하고 확률을 계산한다.
도박도 마찬가지다. 도박장을 운용하는 하우스와 극소수의 도박꾼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잃는 게 도박의 규칙이다. 확률적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는데도 사람들은 숫자에 패턴을 부여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패턴을 추구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인간의 심리에는 장기 투자를 막는 여러 가지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호기심이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주변 환경에서 새로운 자극이 많으면 많을수록 뇌의 건강에 좋다. 그러나 이것이 투자에서는 매우 위험한 본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빠른 피드백으로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단기 매매에는 중독성이 있다. 뇌가 이런 방식으로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장기 투자란 결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사실 매우 어렵다. 인간의 본성과 달리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들과 같이 움직여 인기와 유행에 편승하는 군중심리나 패턴 추구 행위와 호기심에 따른 잦은 매매 등이 오히려 인간의 본성에 맞는 행동이다.
워런 버핏이 투자의 귀재가 된 것은 30년 안팎의 장기 투자를 실행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투자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본성을 잘 알고 그것을 억누를 수 있는 힘일지도 모른다. / 이상건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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