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이 폭락할 때에는 지식보다 배짱과 인내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공포심에 휩싸여 그릇된 의사결정을 하기 쉽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존재가 공포심을 느끼게 되면 본능적으로 이성적 판단 없이 행동을 취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경제학과 뇌과학이 결합된 학문인 신경경제학에서는 공포심에 지배당하는 인간의 모습을 뇌 심층부에 위치한 편도체(扁桃體)의 기능으로 여긴다. 편도체란 사람의 귀의 위 끝부분과 같은 높이의 뇌 심층부에 있는 부분으로 복숭아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편도체라는 이름이 붙었다.
편도체는 인간이 어떤 위험에 처했을 때 경고음을 울리는 경보 장치와 같은 존재다. 만일 당신이 길을 걷다가 갑자기 인도로 뛰어난 자동차로 인해 위협을 느끼면, 편도체는 재빨리 경보음을 울려 반사적으로 그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와준다. 인간이 갑작스러운 위험에 대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계산한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그 자리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거나 더 나아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또한 편도체는 불쾌한 공포스러운 기억을 더 증폭시키는 역할도 한다. 편도체는 인간의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해마(海馬)와 같이 생겼다고 해서 해마라는 이름이 붙었다-와 인접해 있는데,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해마도 같이 활동이 증폭된다고 한다.
변하지 않는 법칙 ‘BLASH’
경보 버튼 장치인 편도체가 왜 투자의 세계와 관계가 있을까. 실제 뇌 관찰에 의하면 주가가 폭락하는 상황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편도체 부위가 급격히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큰 폭의 주가 하락을 공포 상황으로 받아들인다. 뇌에 공포심이 확산되면 사람들은 성급한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투자의 세계에서는 성급한 매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편도체와 관련해 미국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 이 게임의 규칙은 이렇다. 20달러를 가지고 시작해 동전을 던질 때마다 1달러를 걸 수도 있고 반대로 걸지 않고 위험을 피할 수도 있는 게임이다. 게임은 20번 계속된다. 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두 집단으로 구분돼 있다. 한 집단은 편도체와 같은 감정 중추가 손상된 사람들이었고 다른 집단은 정상적인 사람들이었다. 실험 결과는 의외였다. 편도체 기능이 상실된 사람들이 더 좋은 결과를 기록했다. 뇌가 손상된 사람들이 정상인들보다 13% 돈을 더 땄다.
정상인들은 도박을 꺼렸고, 심지어 돈을 딸 수 있는 상황에서도 주저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돈을 잃은 직후에는 주어진 기회의 41%만 판돈을 걸었다. 다시 말해 한 번 손실이 발생하면 그 다음에는 좋은 기회가 있더라도 판돈을 걸지 않고 건너뛰었던 것이다.
반면 뇌의 손상으로 공포심을 느낄 수 없었던 사람들은 주어진 기회에 대부분 판돈을 걸었다. 판돈을 건 경우가 무려 84%에 달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잃은 액수에 상관없이 계속 판돈을 걸었다. 전혀 앞서의 손실은 없었던 일처럼 반응했던 것이다.
어찌 보면 주식시장의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역설적인 시장이다. 인류는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공포심에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생존에 유리하게 결정될수록 손실이 커지는 시장이 바로 주식시장이다.
투자의 세계에서 변하지 않는 금과옥조는 ‘BLASH’란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BLASH는 ‘저가 매수 후 고가 매도(Buy low And Sell high)’라는 문장에서 각 단어의 앞 글자를 조합해 만든 단어다. BLASH란 한마디로 ‘싸게 사서 비싸게 팔라는 것’이다. 이 간단한 문장을 현실에서 일관되게 지키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 원칙만 잘 지킬 수 있다면, 이 세상 그 누구도 금세 부자가 될 것이다.
애석하게도 인간의 본성은 BLASH의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 특히 공포심이나 낙관주의가 지배하는 시기일수록 그 정도가 더 심해진다. 폭락장에선 더 폭락할 것 같고, 가파른 상승장에서는 계속 신고점을 뚫고 하늘을 향해 상승해 나갈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역사가 보여주는 바는 지나치리만큼 명백하다. 폭락장은 시장을 떠날 때가 아니라 버티거나 새로 투자해야 할 시기였다. 폭락 후 통상 짧게는 1년 6개월 길면 3년 정도 기다리면, 다시 플러스 수익률로 돌아섰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인간들이 보여준 행동은 이 명백함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일례로 1987년 10월 19일 미국 증시가 하루 만에 23% 폭락했을 때 개인 투자자들은 앞 다퉈 주식시장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그 이듬해에도 탈출 행렬은 계속 이어져 투자자들이 가입한 주식형 펀드보다 환매한 금액이 150억 달러가 더 많았다. 1987년뿐만 아니라 큰 폭락장 이후에는 투자자들은 어김없이 진저리치며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1980년대 저축대부조합 사태가 발발했을 때고 그랬고, 1990년대 헤지 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가 러시아 채권 투자 실패로 유동성 위기에 몰렸을 때도 그랬다.
사진=픽사베이
‘지금 싸게 살 수 있는가’ 판단해야
우리나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1997년 말 외환위기와 1998년의 주식시장 침체, 9·11 테러 발발 시 큰 폭의 주가 하락이 발생할 때마다 공포심에 질린 투자자들은 마치 불이 난 영화관에서 작은 입구로 내달리는 것처럼 주식시장을 떠났다.
몇 가지 주요 지표를 살펴보더라도 현재 주가는 싼 편이다. 주가수익률(PER)은 10배 이하로 떨어졌고 증권선물거래소의 발표에 따르면 국내 코스피시장에 상장된 기업의 70%가 주가순자산배율(PBR)이 1배 이하에서 거래되고 있다. 국내 상장기업의 70%가 청산 가치 이하로 거래되고 있는 셈이다. PER가 절대적인 투자 판단의 지표가 될 수는 없지만, 과거 역사가 보여준 사실은 PER 10 이하에서 주식을 사서 손해 볼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인간은 바닥이 어디인지 상투가 어느 지점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는 신(神)의 영역이지 결코 인간의 것이 아니다. 각 언론에서 향후 금융시장의 진로와 바닥에 어디인가에 대한 기사를 연일 내보내고 있지만 사실 이런 것들은 실제 투자에서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공포심만 자극할 뿐이다. 투자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측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현재 싸게 살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다.
“주식시장이 하락하는 것은 1월에 눈보라가 치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인 일이다. 대비만 되어 있다면 주가 하락이 당신에게 타격을 줄 수 없다. 주가 하락은 공포에 사로잡혀 폭풍우 치는 주식시장을 빠져 나가려는 투자자들이 내던진 좋은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다.”
“누구나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머리는 있지만 아무나 배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당신이 주가 하락에 두려움을 느끼며 모든 것을 팔아치우는 성격이라면 주식 투자는 물론 주식형 펀드 투자도 피해야 한다.”
이 두 개의 얘기는 월가 역사상 가장 뛰어난 투자가 중 한 명이었던 피터 린치의 얘기다. 지금은 린치의 소중한 조언을 귀담아들어야 할 시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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