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운용은 돈을 가진 사람을 주어(主語)로 해서 바라보면 두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하나는 자금 대여자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산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자금 대여자가 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돈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이자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은행 예금이나 채권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를 다른 말로는 ‘저축’이라고 표현한다.
일례로 우리가 은행에 가서 예금 상품을 가입하면 가입 신청서를 쓰게 되는데 이것은 일종의 차용증과 같은 성격을 갖는다. 차용증을 작성하는 시점에 돈을 빌려주는 기간(대출 기간)과 이자율이 결정된다. 저축을 잘한다는 것은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돈을 잘 빌려주는 것을 말한다.
반면 투자는 자산에 대한 자산 운용자의 지위가 대여자가 아닌 소유주가 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소유주, 다시 말해 주인이 되는 것을 뜻한다. 수익을 얻는 방식도 저축과 투자는 사뭇 다르다. 저축은 돈을 빌려주기 위한 계약을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차용증을 쓰는 시점 즉, 가입 시점에 수익이 결정된다. 저축과 달리 투자는 매도 시점에 수익이 결정된다. 팔아야 모든 것이 끝나는 게임의 규칙을 갖고 있는 게 투자다.
기자 시절, 강남의 '복부인'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너무 투자를 잘하기에 ‘당신의 투자 원칙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변이 걸작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당장 사기 좋은 집을 사려고 노력해요. 그러나 저는 그렇지 않죠. 반대로 팔기 좋은 집을 사려고 항상 신경을 썼죠. 결국 팔지 않으면 돈이 들어오는 게 아니니까요.”
결국 자산 운용은 크게 보면 돈을 빌려주는 게임을 할 것이냐, 아니면 자산을 소유하는 게임을 할 것이냐 둘 중에 하나다. 먼저 저축을 잘하는 방법을 살펴보자. 저축은 돈을 빌려주는 기술이기 때문에 이 원리에 충실하면 된다. 이자를 많이 받으면서도 원금을 떼이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이자를 받기 위해서는 가급적 제2금융권이나 채권을 활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상호저축은행과 같은 제2금융권의 안전성이 걱정된다면 예금자 보호 한도(원리금 합산 5000만 원)로 나눠 가입하면 된다.
저축을 잘하는 두 번째 방법은 절세 상품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다. 장기주택마련저축(펀드), 연금저축(펀드), 청약저축, 세금우대상품 등 세금을 덜 내거나 연말 정산 시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을 집중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꾸준한 거북’ 전략으로 가라
이 두 가지 규칙만 잘 지키면 되는 저축과 달리 투자를 잘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다. 같은 날짜에 동일한 상품에 가입했다고 하더라도 파는 시점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투자 상품인 주식형 펀드를 보면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똑같은 상품에 같은 날짜에 가입했다고 하더라도 투자자마다 수익률이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저축과 달리 투자에서는 투자하기 전에 ‘자신의 원칙’을 잘 만들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은 인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공간이다. 따라서 심리적 변수에 따라 시장 상황에 변동성이 발생한다. 사람들이 강세장이라고 생각해 몰려가면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자산 가격은 천장을 모르고 오른다. 반대로 약세장이라는 인식이 주류를 이루면 호재도 거의 약발이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원칙이 없으면 심리적인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최근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는 자신만의 원칙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미국 사람들의 가계 저축률은 거의 제로(0) 수준인데 1인당 부채는 1억 원이나 된다. 아무리 미국이 초강대국이고 로마 이후 제국의 반열에 오른 유일한 국가라고 해도 부채로 지은 경제는 언제든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사람들은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고 믿고 부채에 부채를 얻고, 금융회사들도 각종 신용 금융상품을 만들어 부채로 쌓아 올린 욕망의 탑을 더 높이 올렸다. 결국 부동산 시장이 휘청거리자 부동산 시장은 바닥을 모르는 듯 고꾸라졌다. 주식시장이든, 부동산 시장이든 분위기에 편승해 과도한 부채를 통한 투자를 하면 위기 상황에 전혀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준 게 서브프라임 사태의 교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투자에서 자신만의 원칙을 세우기 위해 몇 가지 필요한 변수를 점검해 보자. 먼저 기대 수익률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목표 수익률은 조금 과도한 측면이 있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2배 이상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식의 인식은 비역사적인 관점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집값을 예로 살펴보자. 1980년대 말 집값이 엄청나게 폭등한 후 1990년대 초부터 분당 등 5대 신도시가 공급되면서 집값은 명목 가격 기준으로 30%가량 하락했다. 그리고 외환위기 때 큰 폭의 하락세를 기록했고 2001년도에 외환위기 이전 가격을 회복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집값은 쉬지 않고 올랐다. 1990년대 초를 기준으로 10년 동안의 집값 상승세를 보면, 정작 부동산 가격을 집중적으로 끌어올린 것은 약 3~4년의 기간이었다. 다른 기간에는 사실 괜찮은 수익을 내 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오로지 오른 기간을 중심으로 집값을 바라본다. 일종의 최근의 경험만을 중시하는 ‘착시 현상’에 빠진 것이다.
이와 달리 어떤 금융 상품에 가입해 10년 동안 연평균 10%를 냈다고 하면 약 159%가 된다. 1억 원을 투자했다면 원금을 제외하고 1억5900만 원 정도의 수익을 낸 것이다. 배수로 따지면 2.5배가량의 수익이 되는 셈이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단기간에 폭등해 발생한 수익이나 꾸준히 발생한 수익이나 그 질(質)에 있어서는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기대 수익률을 낮추고 거북처럼 꾸준히 수익률을 올리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투자 기간이다. 3년 동안 운용할 자금과 10년 동안 운용할 자금은 분명히 다르다. 연금 상품처럼 20~30년 운용한다면 더더욱 사정이 달라진다.
1802~2006년 200여 년간 미국 주식시장을 분석한 펜실베이니아 와튼 스쿨의 제레미 시겔 교수는 “30년 이상 보유한다면 투자 시점에 상관없이 주식이 채권이나 예금 등 다른 투자처에 비해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얘기한다. 반대로 짧게 끊어서 5년 단위로 보면, 2년 정도는 주식 수익률이 은행 예금이나 채권보다 뒤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30년 이상 투자 시 주식이 ‘최고’
시겔 교수의 실증적 연구는 투자 기간이 자산 운용에 얼마나 중요한 변수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만일 자금을 2년 정도 운용하고자 한다면 주식에 발을 담그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수익률이 나쁜 2년 동안 주식시장에 있어야 한다면 손실이 날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30년 정도 운용한다면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유리한 전략이다.
저축과 투자의 개념 차이는 자산 운용에서 매우 본질적인 문제다. 저축할 때는 저축의 원리에 맞게, 그리고 투자할 때는 투자의 원리에 따라 하는 것이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위험을 줄이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 이상건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
<저작권자 ©I.H.S 버핏연구소(buffettla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