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장기 투자라는 것이 참 어렵구나’라는 사실이다. 옳고 그름의 가치론을 적용할 경우 장기 투자가 좋다는 것에 대한 반론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데이트레이딩이나 기술적 분석을 통해 성공을 거둔 뛰어난 모멘텀 플레이어들은 장기 투자의 유용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만 말이다.
특히 지금과 같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시기에 참고 장기 투자해야 한다고 얘기하면 사람들은 마음의 벽을 높이 쌓아 버린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최소한 10년, 아니 5년 이상을 보고 투자해야 한다고 하면 누가 그런 식으로 투자하느냐며 실소를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워렌버핏, 주식 10~30년 이상 보유
워렌버핏. 사진=구글 이미지 캡처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한 것은 워런 버핏의 말 한마디에 그들도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버핏은 코카콜라와 질레트(지금은 다국적 생활용품 업체 P&G로 합병) 등의 주식을 적게는 10년 이상, 어떤 경우에는 30년 이상 보유하고 있다. 대단한 인내심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간혹 서점에 가서 투자 서적을 고를 때 ‘워렌 버핏처럼 투자하라’라는 식의 제목을 단 책은 일별한 후 대개 사지 않는다. 그와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읽은 후 느끼게 된 것은 나는 버핏처럼 오랫동안 주식을 사서 보유할 정도로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투자에 있어서 놀랄 만한 통찰력을 가진 인물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우리는 가급적 장기 투자를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장기 투자는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다. 먼 훗날의 일보다 사람들은 현재의 일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인간이란 동물이 갖고 있는 호기심은 결과를 빨리 확인하길 바란다.
인간의 본성에 가장 충실한 투자처는 카지노의 슬롯머신이나 즉석 복권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결과를 가장 빨리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도박 산업에서 성장률이 가장 높은 것도 슬롯머신이라고 한다.
예를 한 번 들어 보자. A라는 사람은 10년 뒤에 이런저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고, B는 내일 당장 일어날 일에 대해 예측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는 사람은 바로 B다. 결과가 가장 빨리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B가 내일 아닌 그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 계속해 빼어난 예측력을 발휘할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0년 뒤 A라는 사람의 말이 타당한 것으로 판명됐다. 하지만 아무도 A라는 사람이 10년 전에 한 말이 맞았다고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이미 잊힌 과거의 예측인 때문이다.
장기 투자의 어려움은 인간의 인식론적 오류 때문이기도 하다. 행동재무학에 ‘최근성 편견’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람들이 지난 일보다 최근에 일어난 경험이나 일을 중심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전망대에서 초록색과 파란색 배를 관찰한다고 해 보자. 각각 배의 숫자는 같다. 그런데 두 배는 움직이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파란색 배는 동일한 간격으로 움직이거나 주로 초반이 움직이고 초록색 배는 나중에 집중적으로 움직였다. 사람들은 어떤 배가 더 많다고 생각할까. 대다수는 바로 직전에 집중적으로 움직인 초록색 배가 많다고 대답했다.
투자에서 최근성 편견은 주로 호황기와 불황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이 오를 때 사람들은 이 상승세가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이번만은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고 얘기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가격이 폭락한 후 침체기가 오면 사람들은 이제 투자하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침체가 오래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모두 최근의 경험이나 일어난 일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편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나온 여러 가지 연구 결과를 보면 단기 투자보다는 장기 투자가 승률이 높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반대로 설사 단기 투자로 크게 성공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수는 적고 위대한 장기 투자자 필립 피셔의 얘기처럼 단기 매매란 세 번쯤 연속해 성공을 거두게 되면 네 번째는 결국 큰 손실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연구 결과들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은 현재 자신의 손실이 너무 커 보이고, 시장이 도통 나아질 기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장기 투자에 대한 여러 연구 결과들이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 것이다.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용도와 시간대별로 나눠 투자해야
먼저 마음가짐을 점검해 보자. 장기 투자가 어렵고 재미없고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의 본성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도 수용해야 한다. 이 말은 거꾸로 하면, 장기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성격상 죽어도 장기 투자를 하지 못하겠다는 사람은 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정신건강에 좋다. 이런 사람들은 투자할 때 수익보다는 최대한 손실을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왜냐하면 단기 모멘텀 투자는 단 한 번의 잘못된 판단으로 큰 재산상의 손실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돈을 용도와 시간대별로 나눠 놓는 것이다. 연금 상품처럼 최소한 10년 이상 투자해야 하는 상품과 3~5년 정도의 중기적 목표, 1~2년 정도의 단기 자금, 그리고 생활비를 포함한 단기 유동자금 등으로 쪼개 투자하는 것이다. 이렇게 쪼개 놓으면 그 용도에 맞게 자신의 투자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연금처럼 10년 이상 장기 투자하는 경우라면 주식형 펀드처럼 인플레이션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상품을 활용해야 하고 1~2년 정도의 단기 자금은 가급적 제2금융권의 고정 금리형 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셋째, 경기는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내리막에 있을 때는 다시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반대로 오르막이라면 이제 욕심을 줄이고 조금 멈춘다는 생각으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해야 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어렵기 때문에 우리에게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 이상건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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