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주 버핏연구소 대표가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에 게재한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서평입니다. <기획회의> 출판계의 공향과 서평을 담은 격주간지입니다]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클라우스 슈밥 지음, 송경진 옮김. 새로운 현재. 2016
우리 모두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약 500만년전 아프리카의 어느 한적한 지역에서 등장해 이 지상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다. 500만년 동안 호모 사피엔스는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급격히 진화했지만 진화의 방향은 한결 같았다. 다시 말해 호모 사피엔스는 500만년 동안 딱 두 가지의 제약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침쳐왔다. 첫째는 개체로서의 자연 수명의 한계이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는 ‘미래의 시체’이다. 우리는 죽음이 두렵다. 그래서 우리는 신을 믿고 종교를 믿는다. 둘째는 번식의 한계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개체의 자연수명의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후손을 남기기 위해 노력해왔다.
기왕이면 더 많이 후손을 남길수록 좋은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인류는 사회를 만들고 분업을 했다. 사회를 유지하려니 법과 제도가 필요하고, 교육 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선과 악이라는 개념을 통해 반(反) 사회적인 행동을 규제하고 있다. 내가 그간 당연하다고 느끼는 모든 개념과 규범, 철학, 제도가 실은 개체로서의 자연수명의 한계와 번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소산임을 깨닫는 순간, 나는 놀란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이 두 가지 제약 조건이 최근들어 극적으로 극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500만면의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우선, 개체로서의 자연 수명의 한계가 극복되고 있다. 의학기술과 각종 신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우리는 이제 100세는 물론이고 150세까지 자연수명을 누릴지도 모른다. 이제 오래 사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 수도 있음을 우리는 감지하고 있다. 다음으로, 번식의 한계도 극복되고 있다. 이것 역시 의학, 유전자 등의 신기술 덕분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생을 영위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개체수는 70억개이다. 솔직히 이것은 너무 많다. 호모 사피엔스의 오랜 숙원이던 번식의 한계가 극복된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 500만년에 처음으로 두가지 제약 조건이 극복되는 것을 목격하고 잇는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이 바뀌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이다.
이 변화의 물결에서 선악의 개념도 바뀌는 것을 언뜻언뜻 보게된다(나는 미국의 대선에서 기존의 관습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막말을 하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표몰이를 하고, 필리핀 대선에서 '제2의 도널드 트럼프'로 평가받는 로드리고 두테르데가 당선되고, 브라질 대선에서 아이티 난민을 향해 "쓰레기가 브자질에 들어오려한다"는 막말을 하는 자이르 블소나루 의원이 유력 대선 후보로 떠오르는 현상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해보고 있다) 극적인 전환의 순간에 들어선 지금 우리는 어떤 세상을 준비해야 하는걸까?
이 점에서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은 일독할 가치가 있다. 이 책에는 우리 앞에 어떤 미래 세상이 닥치고 있는지를 어렴품하게나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 책의 저자가 무게감이 있다. 클라우스 슈밥은 스위스 다보스 포럼의 창립자이자 회장이다. 그가 1971년 창립한 세계정제포럼은 이제 전 세계적 행사로 자리잡았다. 매년 초 스위스 알프스의 조그마한 스키 리조트인 다보스에서 개최되는 세계경제포럼에는 세계 주요국의 정상들과 국제 기구의 수장, 그리고 주요국 정책 담당자, 세계적 기업가와 학자가 참여한다. 이런 행사를 만들어내고 참자자들과 교류하면서 클라우스 슈밥은 미래 세상에 대한 혜안과 통찰력을 갖게 됐고, 이는 이번 책에 스며들어 있다.
클라우스 슈밥은 지금의 세상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주범'은 신기술이라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인공지능(AI),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삽입형 기기(인체에 삽입하는 기기)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우리가 충분히 실감하고 잇는 사실이다. 이어, 클라우스 슈밥은 신기술의 등장으로 혜택을 입는 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슈밥이 지적하는 가장 큰 수혜층은 소비자와 이노베이터(Innovator)이다. 소비자는 이제 삶의 효용성을 높이는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등의 재화를 거의 무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대 수혜자이다.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갈수록 저렴해지고 효용성이 커지고 있음을 고려하면 이는 쉽게 이해된다. 다음으로, 이노베이터란 투자자, 주주 같은 신기술의 상용화에 필요한 자본을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노베이터는 소수의 부를 독점하고 있다. 신기술의 패자는 누구일까? 슈밥은 그것은 바로 '노동자'라고 말한다. "제4차 산업혁명으로 창출되는 직업의 과거의 산업혁명으로 인해 발생하는 직업의 수보다 분명히 적다“(68페이지). “1990년 미국 디트로이트 3대 기업의 시가 총액은 360억달러, 매출액 2,500억 달러, 근로자는 120만명이었다. 그런데 2014년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큰 3대 기업의 시가총액은 1조 900억달러로 훨씬 높고, 매출은 디트로이트와 비슷했으나 (2,470억달러) 근로자의 수는 10분의 1 가량(13만 7,000명)에 불과하다. 이것이 이전의 혁명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30페이지) 슈밥은 "신기술은 산업 분야와 직종의 구분없이 노동의 본질을 완전히 바뀌놓는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며 "어떤 자동화 기술이 노동을 대신하게 될지 그 범위를 알 수없다는 것에서 근본적인 불확실성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한다(66페이지)
또, 그는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향후 평생동안 소득을 늘릴 수 없고 자녀와 후손이 자신들보다 더 나은 삶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절망에 빠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노동자가 신기술의 위협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슈밥은 이 책에서 확답은 하지 않고 있지만 - 그는 그럴 경우 대다수 독자에게 절망감을 줄 수 있다는 고려를 한 것 같다 - 그럴 가능성은 절망적일 정도로 낮다는 사실을 넌지시 드러내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다가오는 새로운 세상에서 극소수의 부자와 대다수의 빈자로 나뉘는 현상은 필연으로 보인다. 불평등한 사회는 폭력적인 성향을 띠고, 교도소 수감자의 수가 더욱 많으며, 정신질환과 비만 수준 역시 훨씬 높다. 미국과 영국의 학비는 이미 교육이 사치로 간주될만큼 높아졌다. 대다수의 빈자가 그럼에도 예전보다 유일하게 나은 점은 제4차 혁명이 가져오는 '소비자의 혜택'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뭘해야할까? 저자는 해답도 제시하고 있다(물론 이것도 확실하게 말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당신은 이노베이터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주주나 투자자, 창업가가 돼 부를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소수의 길이다.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은 대다수의 편한 길은 사라지고 쉽지 않은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원제 :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이민주 소장은? <지금까지 없던 세상>(쌤앤파커스 펴냄)의 작가이자 투자 및 경제 교육기업 버핏연구소 대표이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미 퍼듀대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인생, 투자, 경영을 주제로 이메일 레터 『행복한 투자 이야기』를 보내고 있다. 버핏연구소 설립에 앞서 한국일보 기자로 17년을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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