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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경제천동설 손절하기
  • 이민주 기자
  • 등록 2024-06-04 22:08:15
  • 수정 2024-06-05 07:2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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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연구소=이민주 기자]

경제천동설 손절하기. 진보경제학은 어떻게 한국을 망쳤나. 백광엽. 미래사. 2023. 6. 20. 




'낙수효과는 없다'는 억지 


진보경제학은 사실을 경시하고 왜곡한다. 대표적인 게 낙수효과 부정이다. 낙수효과 실종은 재벌과 대기업 과잉규제의 핵심 근거이기도 하다. 


홍장표 부경대 교수(문재인 정부 KDI 원장)는 "재벌대기업과 수출기업의 성장이 중소기업과 내수기업의 성장을 유발한다는 낙수효과에 기대 규제 완화를 추진했지만, 낙수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한국은 삼성동물원, LG동물원에 중소기업들이 갇혀 있는 생태계 탓에 기업 간 양극화가 극심하다"는 주장이다. 패러다임을 전환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의 미래도 없다며 소득주도성장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밀어 붙였다.

 

그는 또 "박정희 정부 때부터 쭉 우리는 소위 낙수효과를 바라고 주로 수출·대기업 중심의 성장모델로 갔다"며 "수출이 잘 돼서 우리 가계가 좋아졌느냐는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고 했다. 수출중심·대기업 선도 전략으로 유례없는 성과를 내고 1인당 소득(구매력 기준)에서 일본을 앞지를 만큼 풍요를 누리고 있다는 기초적인 사실조차 부정하는 행태다. 학현학파 참모에 둘러싸였던 문재인 대통령도 '낙수효과 부정'을 경제정책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2019년 신년기자회견에서는 "오래전에 낙수효과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이명박 정부는 낙수 가설, 즉 부자가 먼저 더 부자가 되면 나중에는 서민도 소득이 증가한다는 가설을 근간으로 경제정책을 운용했으나, 이는 가상적 이론일 뿐 어느 나라에서도 타당성이 입증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편견과 왜곡에 기반한 비합리적 시각이다. 대기업의 투자효과가 중소기업을 살찌우고 고용을 불러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낙수 효과는 엄연히 실재한다. 신문만 펼쳐 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윈윈 스토리가 차고 넘치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대기업과 거래가 많을수록 실적 개선 폭이 크다'는 낙수효과 입증 연구도 부지기수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자동차·트레일러 업종을 분석해 보니 관련 대기업 매출은 2010년 107조 1000억 원에서 2018년에는 141조 6000억 원으로 늘어났다. 반면 같은 업종중견·중소기업 매출은 49조 1000억 원에서 70조 6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증가율을 계산하면 대기업은 32%, 중견·중소기업은 44%다. 중견·중소기업의 실적개선 효과 뚜렷한 점은 강력한 낙수효과의 실재를 입증한다.


조동근·빈기범 명지대 교수팀은 8113개 기업을 조사해 낙수효과가 명백하게 존재한다는 연구결과를 한국경제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중소협력업체가 대기업에 납품을 많이할수록 매출, 고정자산, 고용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하다는 분석이었다. 대기업의 존재가 거래업체와 국민경제에 큰 낙수효과를 불렀다는 의미다.


또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에 따르면 현대·기아차 1차 협력사 250개사의 평균 매출은 지난 10년간 3배 가까이 늘었고, 직원 1인 당 평균 매출 역시 2.4배 증가했다. 대기업이 성장하면서 중견·중소기업이 동반 급성장한 것이 낙수효과가 아니면 무엇인가.


사실 굳이 복잡한 검증도 필요 없다. 직관적으로 생각해도 낙수효과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어떤 기업이든 투자와 생산을 늘리면 다른 기업과의 거래도 늘기 마련이다. 어찌 보면 기업과 경제의 성장 자체가 연쇄적인 낙수효과의 결과다. 진보경제학은 이런 상식적인 관점을 애써 부정한다. 


사실 진보좌파진영도 낙수효과의 존재를 잘 인식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신년사에서 "올해 총 100조 원의 대규모 투자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인센티브를 강화해 기업 투자환경을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의 투자확대를 유도해 경제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취지다. 낙수효과를 부정한다면 취하기 어려운 정책이다. 심지어 '낙수효과는 없다'며 소주성을 주창한 홍장표 교수는 낙수효과를 입증하는 논문까지 썼다. 그는 동료 장지상 경북대 교수(문재인 정부 산업연구원장)와 함께 2015년 발표한 '대기업 성장의 국민경제 파급효과'라는 논문에서 "대기업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한 협력기업에 낙수효과가 일정하게 발생한다"고 적었다. "낙수효과를 둘러싼 쟁점은 낙수효과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낙수효과의 크기"라고 명시했다. 낙수효과 부정이 정치적 레토릭에 불과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정황이다.



'감세는 재벌 부자 위한 것'이란 이분법 


진보경제학이 시장주의 개혁을 비난할 때 조자룡 헌 칼 쓰듯 남발하는 키워드가 부자감세다. 2022년 6월 윤석열 정부가 법인세율 인하(25% +22%) 구상을 담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자 거대 야당의 반응 역시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있는 자만 위하는 '부자감세', '삼성감세' 노력이 눈물겹다는 식의 비아냥을 쏟아냈다. 


하지만 법인세, 포괄적으로 감세가 반서민적이라는 인식이야말로 억지요 '뇌피셜'이다. 낙수효과가 명백하기에 감세정책도 정당하다. 감세가 투자와 GDP 증가를 부른다는 것은 최근 프랑스가 재차 입증했다. 프랑스는 마크롱 대통령 집권 5년 동안 법인세 율을 33.3%에서 25%로 끌어내렸다. 그 결과 5년(2017~2022) 성장 률이 유럽 주요 5개국 중 최고가 돼 '유럽연합(EU)의 경제모범생' 으로 대접받는다. 


미국도 대대적 감세(35%→21%)를 단행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만만찮은 호황을 누렸다. 미국의 감세는 트럼프 이전 오바마 대통령 때부터 시작됐다. 감세정책의 효과는 한국에서도 광범위하게 확인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30년의 방대한 데이터를 돌려 보니 최고세율 1%포인트 인하 시 설비투자 증가율은 3.6%에 달했다. 


그래봐야 부자들만 좋은 '반서민 정책'이라는 비난도 선동에 불과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내내 악화하던 양극화 저지에 성공한 것은 감세에 적극적이던 이명박 정부다. 반면 부자 증세와 '퍼주기'로 치달은 문재인 정부 때는 불평등이 다시 극심해졌다. 


양극화 지표가 너무 악화하자 애먼 통계청장을 전격 경질하고 듯 남 "좋은 통계로 보답하겠다"는 새 청장을 앉히기까지 하지 않았나. 인세 세율을 내리면 세수가 쪼그라든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이 거대 정부의 법인세율 인하(25%→22%) 첫해인 2008년 39조 원 이던 법인세수는 2018년 71조 원으로 불어났다. 세율 인하 10 년 만에 세수가 거의 2배가 된 것이다. 반면 문재인 정부 세율 인상(22%→25%) 2년 뒤인 2020년 세수는 23% 급락했다. 높 

정 은 법인세율은 근로자에게 전가돼 임금도 낮춘다. 법인세율이 10% 오르면 임금은 평균 2.5% 감소한다는 분석도 나와 있다. 


진보진영이 감세 무용론의 근거로 제시하는 주요 팩트는 딱 하나다. 이명박 정부 당시 법인세율을 낮췄지만 투자가 줄었다는 주 장을 무한반복 중이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로 아주 잠깐 투자가 위축됐지만 금방 회복됐다는 게 '진짜 팩트'다. 


자칭 진보 매체와 학자들까지 가세해 새 정부 경제정책을 '실패한 MB 시즌2'로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다. '실패한 MB'라는 수식어부터 악의적 프레임이다. 이명박 정부의 성장률(OECD 대비 초과 성장률)은 외환위기 이후 정권 중 압도적 1위다. MB 정책과 정반대로 '증세 후 퍼주기'에 집중한 문재인 정부야말로 '초과 성장률 꼴찌'의 굴욕을 당했다. 

한국은 이미 대표적 '부자 과세 국가다. 법인세만 보더라도 상위 1%가 84%, 10%가 97%를 부담한다. 반면 두 곳 중 한 곳은 법인세액이 제로(0)다. 이익 규모를 4단계로 나눠 고율의 누진세를 때리는 나라도 한국 말고는 별로 없다. OECD 회원국 절반 이상 은 단일세율 체계다. 기형적 '부자 과세' 손질로 성장률을 높이고 임금까지 올릴 수 있다면 감세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한국은 '대기업 천국'이라는 비난 


진보경제학은 대기업을 한국 경제의 공적이라고 공격한다. 빈곤은 이익을 독식하는 재벌 때문이고, 실업도 직원을 안 뽑는 대기업 탓이고, 투자가 안 되는 것 역시 기업이 금고에 돈을 쌓아두고 안 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학현학파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한국만큼 대기업 갑질이 심한 나라가 없다. 대기업이 기술을 탈취하고 가격을 후려치기 하면서 중소기업은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다"고도 했다. 


대기업이 잘나가는 탓에 중소기업이 취약해진다는 이상한 논변도 넘친다. 몇몇 대기업이 무너지면 한국 경제도 버티기 힘들다며 리스크 관리를 위해서도 재벌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 

장까지 나온다. '삼성이 망해야 한국 경제가 산다'는 식이다. 여의도 국회에서는 대기업 즉 재벌체제는 한국만의 잘못된 구조라며 적극적인 규제로 '대기업 천국'에서 탈피하자는 논의가 넘친다.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은 것이며, 악의적 프레임에 불과하다.


한국이 '대기업 천국'이라는 기본 전제부터 틀렸다. 한국 100대 기업의 매출집중도(전체 기업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는 45.6%로 OECD 주요 19개국 중 15위에 불과하다. 캐나다가 79.1%로 고공비행 중이고 미국·독일 ·프랑스도 전부 50%가 넘는다. 30대 기업의 매출집중도 순위도 19개국 중 14위로 낮다. 


매출집중도 절대치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100대 기업의 매출집중도는 2011년 58.1%에서 2020년 45.6%로, 10년 새 10%포인트 이상 낮아졌다. 같은 기간 30대 기업 집중도도 42.1%에서 31.1%로, 10대 기업 집중도는 26.1%에서 19.6%로 급락세다. 


자산집중도(전체 기업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로 비교해도 마찬가지 다. OECD 19개국 중에서 100대 기업과 30대 기업의 자산집중도는 공히 15위에 머문다. 10대 기업도 13위로 하위권이다. 자산집중도 역시 최근 10년 새(2011~2020) 100대 기업은 59.1%에서 50.6%로 크게 낮아졌다. 100대 기업의 자산증가율은 연평균 2.7%로 100대 미만 기업(6.7%)을 훨씬 밑돌았다. 같은 기간 30대 기업 자산집중률은 42.1%에서 36.3%, 10대 기업 역시 27.9%에 

서 24.2%로 줄었다. 0.07개로 주요국 중 인구 1만 명당 대기업(500인 이상 제조업) 수도 

최저다. 독일은 0.21개로 우리의 세 배다. 일본(0.14개), 미국(0.13개), 영국(0.11개)도 한국보다 많다.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도 필요 이상의 비판은 금물이다. 조 벽이 웃 

선업을 들여다보면 협력사의 영업이익률(2001~2010)이 연 7.3%로,  조선 대기업(7.0%)보다 높다. 설사 대기업의 후려치기가 있었다. 


하더라도 통상적인 갑을(계약) 관계에서 용인되는 범위 이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결과다. 사회사업이 아닌 비즈니스 세계 수 에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고 후려치기라 경 고 비난한다면 코미디일 뿐이다. 


대기업 위주의 성장은 분배를 왜곡하기 때문에 안 하느니만 못한 '나쁜 성장'이라는 주장은 자해적이다. 해외에서 벌어서 안을 살찌우는 게 한국의 대기업들이다. 한국 100대 기업은 해외 매출 비중이 55%, 10대 기업은 65%, 5대 기업은 75% 수준이다. 


삼성전자-SE하이닉스·LG디스플레이·벨트리온헬스케어 같은 일류 기업들은 이 비중이 80~100%다. 해외에서 벌어서 탄탄한 중산층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다. 


대기업은 '성공한 중소기업'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세계무대에서 경쟁하며 수익을 내고 고용을 창출하며 경제를 살찌우는 대기업이 지금보다 더 많이 등장해야 한다. 대기업을 한국 경제의 적폐로 모는 공격은 '나쁜 정치'에 의한 부당한 관여다. 



'오너 경영 · 순환출자는 후진적'이라는 단견 


한국의 경쟁력이 일본을 따라잡았다. 국가경쟁력·신용도 등에서 한국이 일본을 제친 것이다. 20~30년 전만 해도 일본은 미국과 경쟁하는 초일류국가로 '노는 물'이 달랐다. 요즘 말로 하면 넘사벽이었다. 일본에서 배워서 한참 뒤늦게 산업화에 착수한 역사까지 감안하면 감개무량한 사건이다. 


모두의 공이겠지만 굳이 따져보자면 대기업의 기여를 빼놓을 수 없다. 세계 일류로 성장한 대기업 덕분에 국가경쟁력, 제조업 경쟁력, 1인당 GDP(구매력 기준)에서 일본을 앞지른 게 분명한 사실 이다. S&P, 무디스, 피치 등 3대 국제신용평가기관의 국가신용등급은 한국이 일본보다 2단계 높다. S&P의 경우 1990년에는 한국의 신용이 'A+'로 일본(AAA)보다 4단계 낮았지만, 이제 'AA'로 일본(A+)보다 2단계 높다. 


물가와 환율수준을 반영해 국민의 구매력을 측정하는 1인당 경상 GDP 역시 PPP(구매력평가) 기준으로 이미 2018년에 한국(4만 3001달러)이 일본(4만 2725달러)을 따라잡았다. 제조업 경쟁력도 추월 했다. 유엔산업개발기구(UNDO)의 세계제조업경쟁력지수(CIP)를 

보면 1990년 한국과 일본은 각각 17위, 2위였다. 하지만 2018년 

에는 한국이 3위, 일본은 5위로 역전됐다. 


진보경제학은 이런 성과의 의미를 축소하고 기업을 폄하하기 바쁘다. 재벌이 족벌경영 하면서 이익을 독식 중인데 경제성장이 대수냐며 재벌개혁 불가피론을 설파한다. 하지만 이들이 재벌개혁의 근거로 제시하는 이론과 팩트의 대부분은 천동설처럼 시효가 지난 낡은 세계관이다. 오너 경영과 순환출자를 범죄시하는 것부터 그렇다. 작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휘두르는 오너 체제 나 순환출자를 기형적 지배구조라 생각하는 건 과도한 이분법이다. 


소위 '피라미드형 오너 경영체제'는 전 세계 기업들의 가장 보편적 지배구조다. 오히려 전문경영인 체제가 미국과 영국의 주요 대기업들에서만 목격되는 예외적 모델이다. 


한때 전문경영인 체제가 '글로벌 스탠더드'로 간주된 적도 있 었다. 하지만 해외 기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던 지난 세기에 누 군가의 과장과 악의가 보태져 생긴 오해였음이 확인됐다. 전문경 영인 체제가 많다는 미국에서도 161만 개(2013년 기준)의 법인 중 전문경영기업은 전체 법인의 0.2%에 불과하다. 


전문경영인 체제가 우월하고 오너 경영은 열등하다는 증거도 없다. 세계 경제를 앞장서서 이끌고 있는 미국 테슬라, 아마존, 페이스북의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 마크 저커버그만 봐도 오너 경영의 보편성과 장점이 만만찮음을 직감할 수 있다. OECD 회원국의 3분의 2는 대주주가 보유한 주식에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기까지 한다. 저커버그의 페이스북을 비롯해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 구글 모회사 알파벳 등이 그런 회사들이다. 


맨손으로 출발해 세계 일류로 부상한 한국 기업들의 성공도 오너 체제의 장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부족함이 없다. 전문경영인 체제도 장점이 있지만 단기성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단점 역 시 분명하다. 



지금은 대부분 해소된 순환출자 역시 한국 대기업만의 후진적 지배구조가 아니다. 순환출자는 도요타, 도이체방크, LVMH 등 업종불문하고 무수히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애용하는 수법 이다. 


오히려 한국은 순환출자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세계 유일 국가다. '대기업이 자원배분을 왜곡하고 집중을 심화시킨다' 는 기업패권가설이 구미에서 한때 유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분석으로도 가설이 입증되지 않아 지금은 효력을 상실했다. 경쟁 의 범위가 전 세계로 확산된 마당에 자원배분 왜곡 주장은 국내 시장만을 염두에 둔 좁은 시각이다. 


물론 재벌에는 고칠 점이 많다. 글로벌 위상에 걸맞은 책임을 껴안아야 한다. 지배구조를 더 투명하게 하고 책임경영을 강화하 며 사회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변화도 기본적으로 대기업 스스로의 몫이다. 정부가 기업을 잠재적 범죄자나 피의자로 여기고 특정 방향을 강제하겠다는 생각은 월권이 자 나쁜 간섭이다. 정부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전지자가 아니다. 


정부를 대리하는 공무원이야말로 업무 전반의 공정과 효율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해 의사결정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게 현대경제학이 내린 반전 결론이다. 어떤 공직자가 자신의 능력과 도덕성을 과신한다면 그 자체로 자만이거나 위선일 개연성이 높다. 



'재벌은 특혜 덩어리'라는 오해 


'무조건 항복 당시 한반도의 일본인은 70만 명이었다. 이들은 해방 무렵 국내 주요 산업시설의 94%를 소유했다. 갑작스러운 해방에 일본인들은 허겁지겁 귀국길에 오르며 재산을 국내에 남겼다. 그렇게 두고 간 일제와 일본인 소유의 재산은 몰수 조치돼 적산으로 불렸다. 


광복 당시 조선인이 경영하는 소위 민족기업은 극히 소수였다. '호남의 지주 김연수가 1919년 경성방직을 설립해 만주까지 진 출하고 '조선의 유통왕' 박홍식이 인쇄업과 종이장사로 시작해 1931년 화신백화점을 차려 주목받은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남기고 간 적산은 경제건설의 중요한 자원이었다. 


북한은 소련 고문단의 코치 아래 일찌감치 적산을 국유화했다. 하지만 미 군정청은 민간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시간 을 끌다 1948년 건국된 대한민국 정부로 소유권을 인계했다. 적 산을 넘겨받은 이승만 정부는 1949년 '귀속재산처리법'을 제정하고 미 군정청이 1947년부터 시행한 방식을 토대로 신속한 민 간 불하를 실시했다. 그렇게 미 군정기와 이승만 정부 시기 불하 된 적산기업은 2700여 개에 달했다. 


이 '적산'의 특혜 불하가 '재벌 탄생의 기원'이라며 맹렬히 공격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 재벌들은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 아래에서 일본이 남기고 간 귀속재산을 헐값에 불하받아 태동했다"(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주장이다. 출발부터 특혜를 입었으니 재벌은 국민기업이라는 식의 비약도 나온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재 한국 주요기업 대부분은 적산 불하와 공정거래위원회가 2021년 5월 지정한 한국의 71개 대기업집단(재벌) 가운데 적산 불하가 기업집단 형성의 계기가 된 

사례는 SK, 한화, 두산, 애경 등 4곳에 그친다. 71곳 중 4곳이니 비율로는 6%다. 나머지 94%(67개)는 적산 직접 불하와 무관하다. 


1949년 말에 시작해 1963년 5월에 종료된 적산 불하 과정에서 특혜가 수반된 것은 사실이다. 불하가격이 시가보다 훨씬 낮게 책정됐고, 최장 15년 연부상환도 허용됐다. 당시 높은 물가상승 률을 고려하면 장기 연부상환 자체가 특혜였다. 법과 관행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정경유착과 부패도 많았다. 


당시 적산기업 중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곳은 2%도 안 된 다. 적산 불하로 출발한 기업일지라도 두 세대가 넘도록 살아남았다면 끊임없는 노력을 인정해야 마땅하다. 끊임없이 경제적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덕분에 소비자들로부터 선택받았다고 보는 게 합리적 시각일 것이다. 바늘구멍 같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해당 기업들은 '불굴의 승리자'로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경제개발사는 정경유착사'라는 편견 


1962년부터 본격화된 한국의 경제개발사 역시 특혜로 얼룩졌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경제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특정기업에 사회적 자원을 몰아줬다는 주장이지만, 이 역시 과도한 지적이다. 


기적 같은 성공을 가능케 한 한국형 '불균형 성장 전략'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일방적 특혜가 아니라 국가적 요구에 적합한 기업을 전략적 관점에서 선발하고 사회적 자원을 집중하는 방식은어 느 시대에나 있었다. 문재인 정부도 5G나 반도체산업의 전략적 가치를 인식하고 관련 기업에 집중 지원했지만 아무도 이를 특혜 라 말하지 않는다. 


1960~1970년대 경제개발 현장을 지킨 황병태 전 의원의 증언 은 음미할 대목이 많다. 그는 수출입국의 임무를 떠맡은 상공부의 사무관으로 시작해 경제기획원 차관보까지 지낸 정통관료 출신이다. "외자업체를 선정할 때 오직 관심은 그 기업이 어떻게 성공을 거두고 얼마나 국가에 기여할 수 있겠느냐 하는 전략적 고려뿐이었다. 금호그룹 창업자인 박인천 회장이 석유화학사업에 처음 참여하던 과정이나 유찬우 회장의 풍산금속을 방위산업체 로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또렷이 확인된다. 두 업체 모두 한국 대 표 재벌기업으로 성장했지만 당시 전략사업으로 선정되고 육성 되는 과정은 너무도 간단했다. 


사업적 판단 외에는 고려사항이 없었다. 그때 광주에서 운수업을 하던 박인천 회장이 기획원으로 실무과장 사무실을 방문해 석유화학사업 참여 의사를 밝혔고, 그에 따라 장기영 부총리를 거쳐 청와대의 의견을 물었으며 박정희 대통령은 '실무과장이 검토해서 문제가 없다면 승인해주면 되지 않느냐'는 한마디로 간단히 결론을 내렸다. 박 회장이 사업승인 을 받기까지 행정관청과 접촉한 것은 적어도내가이는


사업 참여 상담 차 기획원을 방문한 것과, 서류를 제출하려고 상공부를 방문한 것 등 두 번이 전부였다. 


방산과 중화학공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던 초창기에 풍산 금속을 신동공장 사업주로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오히려 박정희 대통령이 호소를 해가면서 유찬우 회장을 설득했다. 과장도 부총리도 설득 못 하자 직접 나섰다. 


이권에 초연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처신과 행동은 역사적인 평가를 받고도 남을 일이다. 30년이 흘렀지만 개인적으로 재산과 이권에 연관됐다는 어떤 추문도 들어본 적이 없다. 박통 본인은 물론 주변 측근에 대해서도 철저히 지켜진 원칙이었다." 


황병태 전 의원의 기억에 다소의 미화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정경유착이라 부를 만한 일도 실제 많았다. 시대를 짓누른 일 상적 부패의 관행도 깊었다. 그렇지만 맨땅에 헤딩하듯 원시적 자본축적에 집중하는 속도전 과정에서 일정한 잡음은 나오기 마련이다. 부정적 측면만 부각해 경제개발 과정 전부를 특혜로 모 는 것은 균형 잡힌 시각이 아니다. 


부실기업에 세금이 투입되는 것도 특혜라기보다, 어느 나라에 서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해당 기업이 예뻐서 도, 봐주는 것도 아니다. 국가 경쟁력, 고용 유지, 경제시스템 붕 괴를 막기 위한 공동체의 판단으로 이해하는 게 바람직하다. 반 대로 외환위기 때는 30대 재벌 중 대우, 쌍용, 해태, 진로 등 무려 17곳이 무더기 파산했다. '자금지원 중단'이 공동체의 이익에 부 합한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화진 서울대 교수는 시장참여자를 '적당히 나쁜 사람들 (moderately bad person)'로 규정한다. 경제활동의 목적이 이윤창출 이고 생존경쟁을 수반하는 만큼 적당히 나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관점이다. 적당히 나쁜 사람들의 탐욕은 시장을 긴장시키고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제고한다. 시장의 룰을 훼손하지 않 는 한 '적당히 나쁜 사람들'은 경제적 측면에선 유능한 시장참여 자들이다.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누구나 타인에게 크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나쁜 행동을 한다. 때로 빨간불 에 교차로를 건넌다든지, 같이 누군가의 흉을 본다든지 하는 것 들이다. 하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나쁜 일보다 선한 일을 더 많이 행하면서 살 만한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정글 같은 경제현장에서 누군가에게 '왜 당신은 천사가 아닌가'라며 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 건 번지수 틀린 패자의 한탄에 불과하다. 



'주류경제학은 부자만 위한다'는 매도 


주류경제학은 부자와 강자의 경제학이라는 매도가 만만찮다. 이런 선동은 한·미 FTA 반대운동에서 절정을 이뤘다. 당시 진보경제학자들은 무역 확대는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 간 격차를 확대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거대 자본을 앞세운 선진국이 개도국의


부를 끊임없이 빼내간다며 '자유무역은 선진국의 실업수출 대책' 이라고 비난했다. 

이 같은 단순논법은 진보경제학이 거의 모든 경제적 문제를 재단하는 핵심프레임이다. 규제 완화에 반대할 때도 '부자를 더욱 부유하게 만들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규제 완화는 누구 나 자유롭게 기업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자본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뺏기는 격이라는 기적 의 논리를 펼친다. 인간을 시장에 맞출 것이 아니라 시장을 인간 에게 맞춰야 한다는 감성적 주장까지 끝이 없다. 


재벌을 위한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는 없다. 


경제학자의 핵심 관심은 국부 증진이다. 만약 어떤 학자가 재벌 과 부자에 유리한 정책을 제안한다면 그것이 사회 전체 후생과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향이어서지, 남다른 부자 편향 때문은 아니 다. 서민과 중소기업을 앞세우는 진보경제학이야말로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약자를 희생자로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착한 경제학'이라는 미망과 '착한 경제학자'라는 감정과잉에 서 비롯된 감성적 정책의 후폭풍은 언제나 부자보다 빈자에게 치명적이다. 많이 내놓은 정부로 역사에 문재인 정부는 '착한 정책'을 가장 기록될지 모른다. 저소득 근로자를 위한다며 최저임금을 벼락같이 인상시켰고, 비정규직의 '묻지마 정규직화'를 밀어붙였다.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며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고제를 담은 '임대차3법'도 통과시켰다. 결과는 기대와 달리 파괴적이었다. 최하위 계층은 아예 고용시장 바깥으로 쫓겨났고, 상위 귀족 근로자층 급여만 올랐다. 이는 지금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심각한 물가상승의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로또 정규직' 자리를 두고 노노 간 갈등이 폭발했고, 노동시장 선진입자들이 정규직을 싹쓸이한 탓에 청년 채용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전셋값이 5년 전 취임 때의 매맷값보다 높아지는 기막힌 현상에 '벼락거지'가 속출했다. 내 집 마련은 먼 달나라 일이 되고 말았다. 진보경제학이야말로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드는 선순환과 삶을 힘겹게 버텨온 빈자들의 희망사다리를 걷어차 버린 '배신의 경제학'이 아닐까. 


'나랏돈 풀면 경제 좋아진다'는 맹목 


나폴레옹(1769~1821)은 사법 ·군사·행정 등 다방면에 탁월했지만, 경제에는 무지했다. 그는 노동자들을 불러모아 도랑을 파고, 그 도랑에 다시 흙을 메우는 의미 없는 일을 반복시켰다. 공공사업 이 실업자를 구제하고 경제에 활력을 준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런 공공사업에 대한 대중의 호응이 커지자 프랑스는 나폴레옹 사후에 '국립 작업장'이라는 거대한 공공사업기관까지 설립했다. 정부가 앞장서서 돈을 풀면 경제가 활기를 찾을 것이라는 그 럴싸한 이 '나폴레옹 경제학'의 허상을 깨뜨리 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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