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선풍적인 인기로 국내 식품사들이 주목받고 있지만 오뚜기(007310) 만큼은 날개를 펼치지 못하고 있다. 삼양식품, 농심, 빙그레 등 많은 기업들이 두 자릿수의 해외 매출 비중을 유지하고 있지만 오뚜기는 ‘마의 10%’에 갇혀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오뚜기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 6월 20일 넷플릭스가 공개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한류의 인기가 재점화되고, 특히 주인공들의 소울푸드인 컵라면이 화제가 되면서 오뚜기 '진라면'을 비롯한 한국 라면 브랜드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오뚜기가 이번 호황에 편승해 ‘내수형 기업’이라는 한계를 극복할지 기대된다.
◆내수 기업 오뚜기, ‘수혜’로 해외 진출 가능성 열렸다
케데헌의 성공 이후 국내 라면 회사들의 주가가 오르고 있다. 불닭볶음면의 기적을 만든 삼양식품은 지난 11일 최고가 166만5000원을 찍었고 신라면으로 국내외 입맛을 모두 사로잡은 농심도 지난 12일 최고가 57만9000원을 기록했다. 두 브랜드 모두 케데헌 공개 이후 주가가 급속히 오르기 시작했다.
오뚜기 지난 3개월 주가 추이. [자료=네이버]
오뚜기 역시 케데헌 수혜를 받아 지난 12일 최고가 47만원을 기록했다. 지난달 20일 최저가 38만원을 찍은 지 약 3주만이다. 오뚜기 대표 제품인 컵라면 '진라면'은 케데헌에 등장하는 라면과 유사한 디자인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매출 비중을 늘리는 것이다. 오뚜기는 오랜 기간 높은 내수 의존도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삼양식품과 농심의 해외 매출 비중은 각각 78.9%, 15.4%(지난해)지만 오뚜기는 2022년 10.3%, 2023년 9.6%, 지난해 10.2%로 최대 1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는 10.6%다.
오뚜기 해외 매출액 추이. [자료=더밸류뉴스]
다행인 점은 매출액이 계속 늘고 있다는 것이다. 오뚜기 해외 매출액은 2016년 이후로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3분기에는 전년동기대비 18.4% 증가한 960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라면과 즉석밥을 중심으로 베트남, 미국 등에서 성장 중이다.
◆오뚜기 해외 진출 과제 “현지 인프라, 시그니처 제품, 해외 고객 입맛 공략”
오뚜기가 그동안 해외 장사가 부진했던 이유는 인프라와 현지화 전략 부족, 시그니처 제품 부재, 한국인 입맛 맞춤형 제품 등이 꼽힌다.
오뚜기가 판매하는 상품 예시. [사진=오뚜기]
오뚜기는 1988년 미국에 첫 수출을 시작하며 국내 업계 중 일찍 진출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생산한 제품을 현지화 과정 없이 그대로 판매하는 등 제대로 된 인프라를 구축하지 못했고 이를 극복할 만한 전략도 마땅치 않았다. 오뚜기가 다루는 제품은 건조식품(분말카레), 양념소스, 유지류(참기름, 콩기름), 면제품(라면, 당면, 국수), 농수산가공품(즉석밥, 참치, 미역), 기타(신선식품, 냉동식품, 수입품) 등 다양하다. 대부분은 국내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다. 그리고 이 제품들 중 오뚜기를 상징하는 시그니처 제품도 딱히 없다.
물론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함영준 오뚜기 회장은 2023년 11월 장녀 함연지의 시아버지 김경호 전 LG전자 부사장을 글로벌사업본부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지난해 5월에는 함연지가 미국 법인에 합류해 남편과 함께 일하는 중이다. 황성만 대표도 미국과 베트남 법인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진 못했다. 초기에 소극적 행보를 보였던 것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오뚜기는 지난해 7월 창립 55주년을 맞아 ESG 보고서를 공개하며 해외 매출을 2028년까지 1조원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해외 매출액 3614억원의 약 3배 수준이다. 오뚜기는 해외 시장 공략을 본격화한지 얼마 안 됐기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스타 마케팅과 현지 거점으로 ’마의 10%’ 벗어날 준비...올해 예상 PER 13배
방탄소년단 진이 진라면 순한맛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오뚜기]
오뚜기는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위해 먼저 ‘스타 마케팅’을 꺼냈다. 2022년 11월 글로벌 스타인 방탄소년단 멤버 진을 모델로 기용해 진라면의 해외 인지도를 높였다. 진이 촬영한 광고 영상 2개를 공식 유튜브에 업로드하자 10일 만에 누적 조회수 250만회를 넘어섰고 2023년 1분기 라면 수출액도 사상 최대치인 2억 8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올해 3월에는 진라면 멀티팩 프로모션을 진행해 큰 호응을 얻었다. 방탄소년단 진의 초상과 자필 손글씨, 오뚜기 캐릭터 ‘우떠’가 담긴 씰스티커 12종이 동봉된 제품 1300만개를 생산했는데 50일 만에 완판됐다. 지난 3월 오뚜기몰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0배 증가했고 4월 진라면 판매량은 전월대비 34.7% 늘었다. 올해 하반기에도 진의 새로운 초상이 담긴 컵라면 패키지를 선보일 예정이다.
주요 과제였던 해외 인프라 마련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뚜기는 지난 3월 321억원을 투자해 미국 뉴욕 오렌지버그의 현지 시설을 인수했다. 앞서 2022년 9월 인수한 캘리포니아 온타리오 물류센터와 함께 미국 동서부를 잇는 물류체인을 완성했다. 또 2027년까지 캘리포니아 라미라다에 생산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생산라인 확보 효과는 내년 상반기부터 반영될 전망이다.
국내에도 수출 거점을 마련한다. 내년 5월까지 울산 삼남공장 내에 '글로벌 로지스틱센터'를 지을 계획이다. 226억원을 투자하여 지난 3월 착공에 들어갔다. 완공 후 삼남공장의 사용면적은 4배 증가한 5500평이 되고 물류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해 보관 및 처리능력이 기존에 비해 2.5배 증가하게 된다. 현재 경기도 평택, 경남 경산과 함안, 충북 음성에 나눠져 있는 물류센터를 통합해 효율화도 진행한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오뚜기의 올해 예상 실적과 관련, 증권가에서는 매출액 3조 6600억원, 영업이익 1920억원, 당기순이익 1180억원을 내놓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오뚜기의 올해 예상 PER(Price Earnings Ration)을 계산해보면 13.9배이다. PER은 기업의 시가총액을 당기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낮을 수록 저평가돼 있다고 본다. 한국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는 F&B(식음료)주의 평균 PER이 15~20배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평가 상태는 아니다. 또 다른 가치평가지표인 PBR(주가순자산비율)은 0.69배로 1배 미만이다. 그렇지만 오뚜기의 최근 3년 평균 ROE(자기자본이익률)가 한자리수(7.06%)라는 점은 개선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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