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렌 버핏의 평생 동반자' 찰스 멍거 연보
찰스 멍거는 버크셔 해더웨이 부회장이자 워렌 버핏의 평생 동반자입니다. 또, 그는 '정신의 격자 세공 모델' 로 불리는 독자적인 투자법을 갖고 있는 미국의 투자 대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투자에 성공해 미국의 손꼽히는 부호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는 아들을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내고, 스스로가 한쪽 눈을 잃는 굴곡의 개인사를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고 나눔의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1924년
- 1월 1일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서 출생합니다. 워렌 버핏이 살던 집에서 불과 90미터 떨어진 곳이었다고 하네요. 멍거는 외아들입니다. 멍거의 아버지 앨프리드 C. 멍거는 오마하의 변호사였고 어머니 플로렌스는 주부였습니다. 멍거의 할아버지는 연방판사를 지냈습니다.
"저희 멍거 집안에 우둔한 사람은 없답니다"(앨프리드 C. 멍거)
워렌 버핏과 찰스 멍거의 가족들은 친분이 있었지만, 정작 멍거와 버핏은 1959년에야 조우합니다.
- 1920년대는 미국 경제의 호황기였습니다. 1921년부터 1929년 사이에 미국의 국민총생산은 740억달러에서 1,044억달러로 치솟습니다. 벽돌공은 지붕을 접을 수 있는 투어링카를 몰고 다녔고 그의 아내는 실크 스타킹을 신고 다녔습니다
1929년
10월 19일 검은 금요일Black Friday를 계기로 미국 경제가 대공황을 맞이합니다. 주식 투자자 150만명이 주가 하락, 신용 계좌 남용 등으로 몰락합니다. 미국인 4,000만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합니다
1941년(17세) 오마하 센트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시간대 수학과에 입학합니다
1942년(18세) 미 육군에 입대해 기상계측 대원으로 복무합니다
1943년(19세) 미 육군에 복무하면서 파사데나 소재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에 입학합니다. 캘리포니아공과대 재학 중 공군에 입대했고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기상장교로 참전합니다
1946년(22세) 하버드대 로스쿨에 입학합니다
1948년(24세)
-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합니다. 335명의 졸업 동기생 가운데 우등상(마그나 쿰 라우데)를 받은 12명에 포함됩니다
-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로펌(법률회사) 라이트 앤 개릿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합니다. 법조계에서 지명도는 있었지만 규모는 크지 않았습니다. 초봉은 275달러로 당시로서는 풍족한 보수였습니다. 라이트 앤 개릿은 훗날 뮤직 필러 앤 개릿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1949년(25세) 캘리포니아 변호사 협회에 가입합니다
1950년(26세) 에드 호스킨스와 교분을 나누면서 공동 출자로 트랜스포머 엔지니어스라는 소규모 회사의 지분을 갖고 경영에 참여합니다. 이 과정에서 비즈니스 경험과 지식을 습득합니다
1953년(29세)
- 첫번째 부인 찰리 낸시와 '화해할 수 없는 성격 차이'로 이혼합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테디 멍거(9), 몰리 멍거(7), 웬디 멍거(5)가 있었습니다. 멍거는 재정적으로 파산 상태가 됩니다.
- 맏아들 테디 멍거가 백혈병으로 사망합니다.
"하루하루 조금씩 시들어가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상상할 수 없을 겁니다. 테디가 침대에 누워 서서히 죽어가고 있을 때 나는 담요속으로 들어가 잠깐 테디를 꼭 안아보고 나서는 파사데나의 거리를 울면서 걸었습니다."
그러나 멍거는 이 경험을 통해 얻은 것도 있다고 회고합니다.
"인생은 기회비용의 연속입니다. 손쉽게 찾을 수 있고, 자신과 가장 어울리는 사람과 결혼해야 합니다. 이는 투자 대상을 찾는 일과 흡사합니다"
"믿기 힘든 비극을 맞이하더라도, 의지력을 잃고서 그 비극이 두세배 커지게 해서는 안됩니다."
1955년(31세) 멍거의 동료 변호사가 멍거에게 낸시 배리 보스웍라는 여자를 소개합니다. 보스웍은 이혼을 했고 자녀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1956년(32세) 낸시 배리 보스웍과 재혼합니다. 찰리의 자녀와 낸시의 자녀가 합쳐지면서 대가족이 탄생합니다. 멍거는 자신의 피가 섞이지 않은 낸시 쪽 자녀들에게도 엄격하고 올바른 교육을 하려 노력합니다.
변호사일을 하면서 조금씩 돈을 모았고 주식 투자 경험을 쌓기 시작합니다. 또, 친구나 의뢰인의 사업에 자문을 하면서 비즈니스에 대한 통찰력을 얻게 됩니다.
1959년(35세)
- 7월 워렌 버핏을 처음 만납니다.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한 사람은 오마하에서 의사로 일하던 에드윈 데이비스2세 박사였습니다. 버핏은 당시 투자자를 모집하기 위해 의사들을 찾아 다녔는데, 데이비스 박사를 만난 것도 투자를 권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데이비스 박사는 버핏으로부터 몇마디를 듣더니 선선히 투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버핏이 의아한 생각이 들어 물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투자 결심을 굳혔지요?
버핏의 질문에 데이비드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당신의 말을 들으니 찰스 멍거라는 친구가 생각나는군요. 멍거는 당신과 생각이 똑같아요."
이를 계기로 버핏은 멍거를 알게 됐고 결국 오마하의 어느 디너 파티에서 두 사람은 만났습니다.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아차렸습니다"(워렌 버핏),
"그저 그런 인상을 받은 게 아니었습니다. 아주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찰스 멍거).
두 사람은 곧바로 친구가 됩니다. 버핏은 멍거에게 투자가 변호사업보다 더 빨리 부자가 되는 길이라고 권유합니다. 멍거는 변호사업을 하는 한편으로 버핏과 함께 투자 업무를 병행하다가 1965년 변호사업을 그만둡니다
"독립을 원했기 때문에 부자가 되려는 커다란 열정을 품고 있었습니다. 절박하게 그것을 원했지요. 저는 누군가에게 소송장을 보내야 하는 일을 고귀하지 않은 일로 여겼습니다. 어디서 비롯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지요"(찰스 멍거)
1961년(37세) 로스앤젤레스에서 LA타임스를 경영하던 오티스 부스가 신문사 공장터 활용 문제로 멍거를 찾아옵니다. 멍거는 공장터에 아파트를 지으라고 권유했는데, 이를 계기로 아예 오티스의 아파트 건설 사업에 지분을 투자하고 경영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10만달러를 투자해 50만달러를 벌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유사한 프로젝트 다섯건을 잇따라 진행해 모두 성공합니다.
"다 끝내고 나니까 수중에 140만달러가 들어 있더군요."
백만장자가 된 것입니다.
1962년(38세) 친분을 쌓아온 동료 변호사 6명과 함께 로펌인 멍거, 툴레스, 힐즈 앤 리커쇼서(Munger, Tolles, Hills & Rickershauser)를 설립합니다. 설립에 참여한 변호사의 한 사람인 로드릭 힐즈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임시 사장이었고, 그의 아내 칼라 힐즈는 후일 미통상대표부 대표로 일합니다
이와 별도로 투자 회사 훨러 멍거를 설립해 투자가의 길로 들어섭니다. 버핏과는 별도의 투자 회사를 운영한 것입니다. 62~75년 13년간 19.8%의 연평균 수익률을 거둡니다
1965년(41세) 변호사를 그만두고 버핏과 함께 투자에 나섭니다. 그러나 중간에 약 10년간 독립적으로 투자를 하다가 1976년 버크셔 해더웨이 정식 합류합니다
1973년(49세) 미국 주식 시장의 급락으로 타격을 입습니다. 버핏이 미리 투자조합을 접은 것과 대조적입니다
1976년(52세) 버크셔 해더웨이에 정식으로 합류합니다.
1978년(54세) 버크셔 해더웨이 부회장에 취임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와 별도로 웨스코 파이낸셜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웨스코 파이낸셜은 버크셔 해더웨이가 80%의 지분을 갖고 있고, 보험, 가구 대여, 철강 디스트리뷰션 관련 기업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1980년(56세) 백내장 수술이 실패하고 심각한 고통과 합병증이 수반되면서 왼쪽의 시력을 잃게 됩니다. 오른쪽 눈도 주변시가 없어지고 정면시만 남게 됩니다. 이때부터 두꺼운 백내장 전용 안경을 착용합니다
1984년(60세) 1월 웨스코 파이낸셜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합니다
1993년(69세)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400대 부호 리스트에 오릅니다
1993년(69세) 포브스 표지 인물에 실립니다
1994년(70세) 남가주대 경영대학원에서 '투자관리 및 사업과 관련한 기초적이며 세속적인 지지혜에 관한 강의'라는 제목으로 강연합니다
"여러 분은 머리속에 모델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직접 경험이든 간접 경험이든 여러분의 경험을 이 모델의 격자위에 정렬해야 합니다. 기억한 것을 앵무새처럼 그대로 되뇌는 학생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낙오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경험을 여러분의 머리속에 있는 모델들의 격자 위에 결합해놓아야 합니다.
또, 다양한 모델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만일 한 두 개의 모델만 갖고 응용하면, 인간이 가진 심리의 본성에 따라 그 모델에 현실을 억지로 뜯어 맞추려 하거나, 적어도 현실이 그 이론에 맞는다고 애써 간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건 병원에 가야 할 병을 지압으로 치료하겠다고 덤비는 얼간이 척추교정 지압 치료사와 마찬가지 꼴입니다."
1997년(73세) 유통기업 코스트코 이사에 선임됩니다. 멍거는 코스트코가 이뤄낸 혁신에 놀라움을 표시합니다
2009년(85세) 여덟자녀를 둔 가장이자 자선활동에 열심인 박애주의자로 지내고 있습니다. [Copyright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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