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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한국의 상업 자본주의는 언제 시작됐나? 『이승만과 기업가 시대』
  • 이민주
  • 등록 2017-07-28 15: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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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과 기업가 시대. 김용삼 지음. 북앤피플 펴냄. 2013년 5월. 부제 : ‘성공한 나라’ 대한민국의 기초가 닦인 피와 땀의 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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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대 해방 직후의 한국(남한)에서 발전했던 산업은 상업 무역이었다.
해방 직후 중국의 톈진(천진), 다롄(대연) 칭다오(청도) 등에 주둔했던 일본군의 군용 창고나 일본 상사의 창고에 보관중이던 농산물, 화공약품, 공산품, 생필품을 한국으로 들여오는 것이었다. 흔히 정크 무역으로 불렸다.
대금은 오징어, 말린 새우, 한천, 인삼이었다. 말하자면 물물교환 형태의 원시적 무역이었다. 무역업자들은 10배가 넘는 노다지 장사로 큰 재미를 봤다.
이 시기에 박흥식이 정크 무역으로 큰 돈을 벌었다. 그가 운영하던 화신무역은 유럽, 아프리카, 동남아까지 진출했고, 중국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톈진에 출장소를 설립했다.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상업 무역은 더욱 활기를 띄었다. 당시 우리의 주력 수출품은 고철과 탄피였다. 전쟁의 상흔으로 전국 방방곡곡에 고철과 탄피가 널려 있었다. 전국에서 수집된 고철과 탄피는 일본과 홍콩으로 수출됐다. 대신에 한국인들에게 꼭 필요한 설탕을 비롯한 먹거리, 의류를 비롯한 생필품이 수입됐다.
전시 무역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지금의 한국의 대기업의 상당수가 전시 무역업을 통해 자본을 축적했다.

- 이런 흐름을 타고 이 시대의 거물로 떠오른 기업인은 천우사의 전택보(全澤珤, (1901~1980)였다. 그가 운영하는 천우사는 1960년대 우리나라 무역업계 선두이자 보세가공 수출의 대명사였다. 전택보 사장은 무역 이론과 실제의 1인자이고 천우사의 연간 실적 2천만 달러는 국내 1위였다

함경남도 문천군이 고향인 전택보는 어린 시절 부친을 따라 북간도로 이주, 용정에 있는 영신학교 고등과를 졸업했다. 일본 유학을 떠난 그는 고베고상(高商)에 진학, 1930년대 우등으로 졸업했다. 이후 미국의 내셔널시티은행 고베지점에 한국인 최초로 입사했다. 이듬해인 1931년 귀국한 전택보는 고향에서 금융조합을 운영했다.
그는 1941년 두만강에서 만주로 건너는 관문인 함경북도 도문에서 동만상사라는 무역회사를 차렸다. 함흥에서 어물을 구매해 중국에 가져다 팔았다. 그는 태평양 전쟁 말기의 어수선한 시국에서 함흥에서 집산되는 명태, 멸치, 청어 등의 어물을 모아 만주 봉천, 하얼빈, 베이징에까지 내다 팔았다. 이를 통해 그는 상업 무역의 본질을 깨달았다.

광복이 되자 그는 1947년 천우사를 설립했다.  1954년 필리핀 마닐라와 1960년에는 미국 뉴욕과 일본 동경에 지점을 설치했다. 1959년 자신의 회사에 보세가공부를 두어 가발과 간단한 의류 봉제품을 가공수출하기 시작했다. 이어 항공부와 선박부를 설치했고 합판을 만드는 대성목재를 인수했다. 1960년 3월 전택보가 합판 수출을 개시한 이래 1961~63년까지 합판은 단일 품목으로는 가장 많은 수출을 기록했다. 이밖에 조화, 완구, 야구 글로브, 화물선 수출을 비롯해 농축산업 발전에도 기여했다.

5 16 직후 전택보는 한국경제협의회가 군사혁명 지지 결의문을 내는 것을 반대하다가 반혁명분자로 몰려 옥살이를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박정희 장군은 그를 석방시켰다. 이후 전택보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게 보세가공을 통한 수출주도형 전략을 가르치는 스승이 됐다. 박정희 의장은 전택보의 조언에 따라 보세가공무역을 국가 시책으로 결정했다.
- 해방 직후에 상업무역이 발전한 것은 시대의 반영이었다. 제조기업의 90%는 북한에 있었고 남한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남한에서 가능한 사업이라고는 상업 무역이 사실상 유일했다.

상업무역은 자본주의의 출발점이다. 자본주의 출발이 상업 무역임은 자본주의 탄생지인 유럽의 역사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중세 유럽 베네치아도 상업 무역. 이슬람에서 후추를 구입해 유럽 각국에 판매. 상업 무역의 뒤를 이은 것은 제조업, 구체적으로 소비재 제조업이었다. 본격적인 자본주의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이병철의 제일제당이다.
이병철의 자본 축적의 출발점은 상업 무역이었다. 이병철은 1951년 1월 부산에서 삼성물산 주식회사를 차리고 무역업을 시작했다. 고철과 탄피를 수출하고 생필품과 의약품을 수입해 팔았는데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1년 후 결산을 해보니 자산이 66억원으로 출자금의 20배로 불어나 있었다.
이병철은 이 자본으로 제조업을 결심했다. 사업 분야는 설탕이었다. 당시 설탕은 100% 외국에서 수입되고 있었다. 그러나 리스크도 만만치 않았다. 1953년은 전쟁의 포성이 멎지 않은 때였다. 임원들은 전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판에 안전하고 수지 맞는 무역업을 팽개치고 제조업을 위해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는 제조업을 하는 것에 반대의견을 개진했다. 그러나 이병철을 밀어 부쳤다.

- 제당업은 수지맞는 사업이었다. 1953년 우리나라 설탕 수입량은 2만 3,800톤이었다. 수입 가격은 톤당 35달러 수준이었다. 그때까지 수입 의존도 100%였던 설탕은 제일제당의 가동 덕분에 수입 의존도가 1954년 51%, 1955년 27%, 1957년 7%로 급격히 떨어졌다. 제일제당이 승승장구하자 경쟁사가 뛰어들어 동양, 삼양, 대한 등 7개 업체가 난립하게 됐다.
이병철이 다음으로 도전장을 낸 분야는 의복이었다. 역시 소비재 제조업이었다. 제일모직은 이런 배경에서 설립됐다.
당시 마카오에서 수입한 영국제 복지 한벌에 7만환이었는데, 제일모직이 선보인 골덴텍스는 5분의 1인 1만 2,000환이었다. 품질이 외제 못지 않다는 소문이 나면서 골덴텍스는 이 땅에서 마카오 복지를 밀어냈다. 제일 모직과 제일제당의 성공으로 이병철 창업주는 당대의 거부가 됐다. <호암자전>에서 이병철은 이 시기를 회고하고 있다.  

- 제조업은 물류업의 뒷받침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물류업도 발전했다. 대한항공이 그 주인공이다.
대한항공의 설립자 조중훈은 어린 시절부터 재봉틀이나 유성기같은 기계들을 분해하고 결합하는데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집안이 몰락해 다니던 휘문학교를 중퇴한 조중훈은 해양대학교의 전신인 해원양성소 기관과에 입학햇다.
해원양성소를 졸업한 그는 일본 고베의 군수산업 기업에 취업, 2등 기관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중국과 동남아를 두루 돌아다니며 세상 구경을 했다. 이때 그는 사업가의 꿈을 키웠다.
1943년 사업의 꿈을 안고 귀국한 그는 이연공업사를 차리고 엔진 재생, 용접, 기계 수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회사는 1년이 되지 않아 문을 닫았다.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기계들을 일제가 군수지원명목으로 징발해갔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징용 영장이 떨어지자 조중훈은 징용을 피하기 위해 용산의 군수품 기업에 들어가 자동차 운송관리부에서 일했다.
해방이 되자 조중훈은 트럭 한대를 구입해 인천에 한진상사라는 운송 겸 무역 회사를 차리고 경인 가도를 왕래하는 운수업에 뛰어들었다. 당시만 해도 운수업은 천한 사업이라고 해서 경쟁자가 별로 없었다. 이병철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 트럭 한대의 가격은 요즘의 점보 제트기와 맞먹었다.
그 무렵 정크 무역이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정크선을 통해 들어오고 나가는 물자가 늘어나면서 인천과 서울을 오가던 화물 트럭업자인 조중훈이 덩달아 호황을 누리게 됐다. 사업이 날로 확장돼 트럭 30대, 물자 운반선 10척으로 늘었다. 이때 그는 자본을 축적했다.
그가 크게 일어선 계기는 대한항공 인수였다.

그는 정크 무역의 호황을 타고 큰 돈을 벌어 한진그룹, 대한항공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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