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연구소 이재민 연구원] 2007년 한국 조선업계는 초호황이었다. 수주가 봇물 터지듯 밀려 들었고, 조선사의 재무제표에는 현금이 쌓였다. 하지만 이 기간 자본 총계는 줄고 부채 비율은 급등했다. 빅3 조선사의 부채 비율은 1500%에 이르렀다. 시장은 조선사의 부채가 급상승했다는 사실에 겁을 잔뜩 먹었다. 회사채 금리가 뛰었다. 신용등급도 내렸다. 언론도 앞다투어 조선사의 높은 부채비율을 지적했다.
그렇지만 이는 조선사의 업종 특성을 몰라서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조선사는 선박을 건조하기 전에 선주로부터 계약금을 받는다. 이는 재무상태표에 '선수금'이라는 부채로 기록된다. 요컨대 조선사가 선수금이 늘어 부채비율이 높은 것은 수주 물량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호황기에는 선수금 유입으로 부채비율이 급상승한다. 불황기 조선사는 유입된 선수금이 줄어 부채비율은 되레 안정적으로 나타난다. 재무제표를 읽을 때 업종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보여주는 사례다. '대한민국 업종별 재무제표 읽는 법'을 읽다보면 제조업, 수주업. 유통업, 서비스업, 금융업은 각각 '다른 세상'이며, 각각의 업종에 속한 기업의 경영현황을 파악할 때 사용할 재무비율도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책은 업종을 크게 금융업, 제조업, 수주업, 소매유통업, 서비스업 5가지로 나눠 각각의 재무제표에서 집중해서 봐야할 계정과목과 재무비율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조선업의 부채비율처럼 하나의 계정과목이 다른 업종에서 다르게 읽혀 오해를 불러오는 경우는 심심치 않게 많다. 조선사와 건설사를 예로 들어보자. 재고자산이 적어야 좋다. 조선사의 선박이나 건설사의 아파트는 애초부터 살 대상이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건조나 시공에 들어간다. 그런데도 이들 기업의 재무상태표에 완제품(재고자산)이 쌓여있다면 애초에 인수하기로 약속한 고객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사정이 생겼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실 신호다. 반면 정유사나 철강사는 다르다. 재고자산이 많아도 문제될 게 없다. 정유사의 재고자산인 경유, 항공유, 휘발유, 아스팔트, 벙커C유는 진부화의 우려가 없다. 되레 인플레이션이나 유가폭등에 대비한 비축용으로 위기 시 효자 노릇을 할 수 있다. 철강사가 쌓아두는 재고자산도 철광석 생산지의 기상이변이나 수급 불균형 사태에 대비하는 비축용으로 쓰일 수 있다. 저자 이민주는 "우리의 삶은 사실상 모든 것을 기업에 의지하고 있다. 재무제표 지식이 영어 구사능력보다 세상살이에 더 필요하다고 과언이 아니다"면서 "버핏이 재무재표를 읽어가면서 투자의 전설이 된 것처럼 독자들도 인생이 풍요로워지기 바란다"고 밝히고 있다. 성공 투자를 위한 필독서라고 할만 하다.
이민주 지음. 스프링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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