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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고객을 발명한 사람 헨리 포드
  • 이민주
  • 등록 2026-03-31 18:57:44
  • 수정 2026-04-01 08: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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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을 발명한 사람 헨리 포드. My life and work. 헨리 포드 지음. 공병호 옮김. 2006. 

원작 'My Life and Work'은 1923년 출간 


'자동차 왕' 헨리 포드(1863~1947)

◆ '현대'를 발명한 기업인 


인류 역사의 위인들 가운데 그가 남긴 업적에 비해 가장 소외돼 있는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헨리 포드(1863~1947)이다. 헨리 포드는 인류 역사상의 위인들을 그가 남긴 업적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다면 첫번째 자리에 모셔야 마땅하다.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를 창조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가 직장에서 일하면서 고정적인 급여를 받는 고용 사회를 「현대」라고 한다면 헨리 포드는 그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헨리 포드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여기에 관련된 일화가 있다. 


노년에 이른 포드는 우연히 존 다링거라는 소년과 함께 미국의 교육 제도에 대해 토론을 하게 됐다. 이 소년은 포드가 미국의 교육 제도에 대해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반론을 제기했다.  


『할아버지, 이젠 세상이 달라졌어요. 지금은 현대란 말예요』 


그 말을 들은 포드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얘야, 그 「현대」를 발명한 게 나란다』


헨리 포드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회사에 출퇴근하는 대가로 고정적인 급여를 받는 세상을 대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인류 역사에 끼친 영향은 깊고도 방대하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 교과서는 헨리 포드를 단 몇마디의 문장으로 언급하는 것으로 끝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 교과서만으로는 포드가 얼마나 인류 역사에 어마어마한 일을 했는지를 짐작하지 못한다. 지금의 교육 제도는 세상의 진실을 보여주지 못한다.  


-헨리 포드는 미국 사회 구성원들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1880년경 미국의 백만장자 숫자는 100명 가량이었는데, 1916년이 되자 4만명으로 급증했다. 


-헨리 포드의 산업화는 미국 사회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가장 크게는 성공 방정식이 바뀐 것이다. 이전까지 경영자는 저주받은 직업인이었다. 그런데 경영자가 멋진 직업인으로 칭송받게 됐다. 경영대학원(비즈니스 스쿨, MBA 스쿨)도 이 무렵 생겨났다. 


- 경영자의 역할이 증대됐다. 이전까지는 '경영(management)'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다. 그런데 포드 자동차가 성공하면서 산업 전략을 이끌고, 동맹을 이루거나 깨고, 진격 지점을 선택하고, 전체 사업의 세부 계획을 감시 감독할 수 있는 능숙한 기술, 즉 경영 능력이 중요했다. 이에 따라 최고 경영자의 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 포디즘은 미국 사회에 풍요를 가져왔다. 당대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말한 '금칠갑 시대'(Gilded Age)에 그 장면이 나온다. 어느 졸부는 연회에서 지폐로 담배를 말아 피웠는데, 이는 순전히 부의 냄새를 빨아들이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였다. 어느 졸부는 산책을 나갈때 1만 5,000달러짜리 다이아몬드가 박힌 개목걸이를 씌운 강아지를 데리고 길을 나서기도 했다. 어떤 아기는 1만달러짜리 요람에 누워있었고, 네명의 의사가 둘러선 채 아기의 건강 상태를 정기적으로 보고하기도 했다. 어느 졸부는 성(Castle)을 짓고 뉴욕에서 사들인 미술품들로 성의 방 곳곳을 채웠다. 이들중 일부는 돈없는 유럽 왕실 자제를 자기 사위로 모아들이기도 했다. 


-헨리 포드의 가장 큰 업적은 자동차를 일반 대중이 살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당시 자동차는 부유층만 소유하는 고가 제품이었지만, 포드는 오로지 한가지 모델(모델 T)을 대량 생산했다. 컨베이어벨트 시스템, 분업화, 시간 연구, 동작 연구를 도입했다. 그래서 자동차 가격을 대폭 낮춰 농부와 노동자도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게 했다. 이는 다동차가 “사치품 → 생활 필수품”으로 바뀐 결정적 계기가 됐다.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한 것은 결정적이었다. 포드는 이동식 조립라인(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결과 자동차 생산 시간을 12시간 → 1시간 30분으로 획기적으로 단축시켰다. 자동차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가격은 급격히 하락했다.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은 전 세계 제조업의 표준이 됐다.


-그는 노동자 임금을 대폭 올렸다. 일당 5달러 정책이 그것이다. 1914년 포드는 당시 기준으로 파격적인 정책을 발표했다. 하루을 임금 5달러(기존 대비 두 배)로 지급하고 8시간 근무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헨리 포드의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근로자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것의 이면에는 자사 노동자가 포드자동차를 사게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즉 “생산자 = 소비자” 구조를 만든 것이다. 


◆ 헨리 포드의 명언(Qoutes) 


"할 수 있다고 생각하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든 당신이 옳다.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Whether you think you can, or you think you can't — you're right, because you'll become what you think)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돈을 잃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인생을 잃는 것이다."


"고객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고객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다면 고객은 "더 빠른 말(horse)"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복잡함은 비용을 증가시키고 단순함은 이익을 만든다."

 

"성공의 비결은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비전 없는 행동은 시간 낭비이고 행동 없는 비전은 꿈일 뿐이다."


"장애물은 목표에서 눈을 돌릴 때 보인다."


"인간이 자신의 내면의 능력과 강점을 체계적으로 탐구한 것은 정말이지 얼마되지 않는다."


◆ "대중의 생각에 매몰되지 말라"


-헨리포드는 1863년 미국 미시간주 디어본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부터 기계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독학으로 시계를 연구해 고장난 시계를 거뜬하게 수리했다. 이는 그가 '자동차 왕'이 되는 밑거름이 됐다. 그는 '말없는 마차'(자동차)를 만드는 것에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 헨리포드는 1876년에 어머니를 잃었다. 이 경험 이후 그는 내성적인 성격에서 더더욱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그의 유일한 친구는 고장난 시계, 농기구 등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직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16세에 디트로이트로 갔다. 여기서 공장 기계 견습공으로 취업했다. 여기서 그는 가스엔진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헨리는 자기 자신의 가스엔진 자동차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고향에서 아버지가 물려준 5만평의 땅에서 산림을 벌채해 목재를 판 돈으로 엔진 만들기에 열중했다. 


-취직과 더불어 훗날 자신을 자동차왕으로 이끌고 도와줄 클라라 브라이언트와 결혼했다. 


-당시 미국 창업가들에게 자동차는 신사업으로 관심을 끌었다. 독일에서 벤츠와 다임러가 가소린 자동차를 발명하자 이 여파가 유럽 전체로 삽시간에 퍼져나가 여러 곳에서 시험용 자동차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고, 이 영향은 미국까지 건너와 일리노이주에 사는 듀리 형제가 미국 최초로 가소린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등 바야흐로 내연기관 자동차 개발열기가 기운차게 일어났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도 헨리는 별다른 결과를 얻지 못했다. 


-1891년 에디슨전기회사에 취직했다. 헨리가 이 회사에 들어간 이유 중의 하나는 이제까지 해온 자동차 연구중에서 가장 취약했던 자신의 전기지식을 보완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회사일이 끝나는 대로 집으로 달려와 밤을 잊고 엔진연구에 몰두했다. 그로부터 2년 만인 1893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드디어 2기통짜리 엔진을 부엌 싱크대 위에서 완성했다.  헨리는 이 엔진으로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셋방 뒤켠에 아예 공작실을 차려놓고 퇴근 후에는 침식을 잊은 채 자동차 만들기에 몰두했다. 


-천신만고 끝에 1896년 5월 초여름 새벽, 최초의 2기통짜리 포드자동차(일명 '쿼드리사이클')를 완성됐다. 헨리는 차를 시험운전하기 위해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밖으로 끌어내려 했으나 공작실의 문이 좁았다. 그는 도끼로 문과 벽의 일부를 부쉈다. 도끼 소리에 잠에서 깬 가족들이 뛰쳐 나왔다.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첫 시운전을 했다.  조수가 자전거를 타고 안내하는 새벽길을 따라 거뜬히 거리를 한바퀴 돌아오는 시운전은 성공이었다. 이 차가 바로 유모차를 닮은 포드1호인 쿼드 리사이클(Quadricycle)이다. 이것이 포드 자동차의 시작이었다. 


1899년 첫 회사 설립했지만 실패했다. 이어 1901년 두 번째 회사를 설립했지만 또 실패했다. 


-1903년 그는 포드 자동차 회사를 설립했다. 임직원 10명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모든 것의 해결이 아니었다. 


-우선 경쟁자가 많았다. 헨리 포드가 자동차 회사를 설립했을 때 당시 미국에는 이미 88개의 자동차 회사가 있었다. 디트로이트에서만 15개 자동차 회사가 경쟁했다. 그는 이들과 경쟁해야 했다. 


-결정적으로 자동차 수요가 없었다. 비쌌고 고장이 잦았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유용하고 익숙한 교통수단은 단연 우마차였다.   


"자동차는 세상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수요랄 것도 없었다. '말없는 마차'는 별난 취미 정도로 취급받았다. 똑똑하다는 사람들은 자동차가 절대 장난감 이상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친절하고도 자세하게 설명했다. 돈 있는 사람들도 자동차가 상업적인 가능성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아주 낙관적인 사람은 자동차가 잘하면 자전거와 맞먹는 수준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 어떤 이는 자동차는 사치이며 트럭 정도라면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들은 자동차가 경제의 중요한 부문이 될 것이라는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헨리 포드)


-"대중의 생각에 매몰되면 사업의 기회는 사라진다. 그들은 어제는 과거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며 지난해의 사고를 그대로 갖고 오늘 잠에서 깨어나는 사람들이다. 삶에 정착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위험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는 다음번 진보의 바퀴가 돌아갈 때 내동댕이쳐지는 것이다."(헨리 포드)


"똑똑한 사람들이란 늘 그런 식이다. 너무나 똑똑하고 현실적이어서 항상 뭐가 안되는지에 대해 훤히꿰고 있다. 늘 한계 밖에는 모른다.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전문가를 절대 쓰지 않는다. 경쟁자를 꺾고 싶다면 그에게 전문가를 보내주면 된다. 그러면 경쟁자는 전문가의 충고를 듣느라 일은 거의 하지 못할 것이다."(헨리 포드)


-그는 생산 방식을 혁신하기로 마음먹었다. 앞서 언급한 컨베이어벨트 시스템, 시간연구, 동작연구, 분업화가 그것이었다. 이 결과 1908년 'Model T'를 내놓았고 이는 대성공했다. 헨리 포드는 자본주의 역사상 부호 7위로 기록된다. 1위는 존 D. 록펠러이다. 

  

◆ "창업가는 세상을 바꾸려는 혁신가여야"


- 기업가는 지도자로서 동종 업계의 어느 회사보다도 더 많은 임금을 주겠다는 야심을 품어야 한다. 


- 기업주가 직원들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다그쳤는데 직원들이 최선을 다해봤자 아무런 보상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연히 '슬슬 시간이나 떼우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열심이 일한 결실을 자신의 월급 봉투에서 보게 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때는 자신도 사업의 일부이며, 사업의 성공이 자신에게 달려 있고, 자신들의 성공은 사업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개닫게 된다. 


- 노동자 한 사람에게만 국한된 문제라면 생계비나 수익을 얼마나 받아야할까는 간단한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 개인이 아니다. 그는 국가의 부에 기여하는 한 사람의 시민이자 가장이다. 양육해야 할 아이들이 있는 아버지일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노동자에게 급여를 충분하지 않게 지급한다면 그의 어린 아이들과 어머니들까지 일하러 나가야만 하는 끔찍한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창업가는 근본적으로 혁신가일 수 밖에 없다.  1920년께 미국의 모든 산업이 침체 상태에 빠졌다. 문을 여는 자동차 공장보다 문을 닫는 곳이 더 많아졌다. 문을 닫은 공장 중 상당수는 은행가들의 손에 완전히 넘어갔다. 제조기업치고 재정 상태가 나쁘다는 소문에 시달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나의 포드 자동차 회사도 자금난에 처했다. 그렇지만 나는 여기에 굴복하지 않았다. 


-현실을 인정하라. 길거리에서 손을 벌리는 이웃에게 가진 돈을 전부 털어 주는 것이 나누는 삶이 아니다. 구조조정을 해서 직원을 자르고, 그래서 기업이 이익을 내서 돈을 벌면 그 돈을 소외된 이웃에 기부하는 것이 나누는 삶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의 성공 법칙이다. 

hankook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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